이주노동자권리조약 비준 서둘러야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로 끝나는 노래 구절이 있다. 돈벌기 위해 오빠는 서울만이 아니라 미국으로 독일로 일본으로 떠났다.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갔다. 동생에게 비단구두를 사주기 위해서 말씨도 다르고 음식도 다른 곳에서 피땀을 흘렸다. 이제 오빠 주변엔 피부색이 다르고 말씨가 다른 일꾼들이 있다. 오빠는 그들을 때리기도 하고, 가두기도 하고, 월급을 주지 않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외국인 노동자’라 하고, ‘이일에는 제격이야’라며 힘든 일만 시키면서도 우리 밥그릇을 뺏으러온 불법침입자라 손가락질 한다. 10만 명에 이르렀다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문제가 낯설지 않게된 우리의 이야기이다.
콘템플라시옹 이야기
95년 초 싱가포르에서 일하던 필리핀 가정부 콘템플라시옹이 주인집 아들과 동료 가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당했다. 그녀의 혐의가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과 그녀를 구제하기 위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같은 해 홍콩에서 일하던 또 다른 필리핀 여성이 8층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홍콩이민국이 그녀를 불법취업자로 기소하려는 상황에 몰린 그녀의 선택은 죽음이었다. 이런 비극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이주노동자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으며, 이주노동자가 머무르는 세계의 지붕 곳곳에선 폭력과 혐오의 연기가 끊임없이 치솟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foreign worker), 이방인 노동자(alien worker), 손님노동자(guest worker), 이민노동자(immigrant worker) 등 나라에 따라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이들에 대한 적대감은 경기후퇴와 실업 속에서 증폭되고 있고, 인간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노동사무국(B.I.T)의 90년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50명 중 1명 이상 꼴의 인구가 국경을 넘어 이주노동자 또는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동유럽과 아프리카, 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이동의 화살은 서유럽과 중동, 아시아의 용 4개 국가와 북미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 인구의 7%, 벨기에의 9.8%, 스위스의 18%, 발칸 3국 인구의 5%가 이주민이다. 주요 석유생산국 노동자의 무려 63.2%가 자국민이 아니며, 카리브해 연안국 인구의 10%가 북미로 이동하였다.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를 송출하고 있는 아시아의 경우 그 수는 파키스탄 28만, 인도 47만, 타이 25만, 방글라데시 19만, 스리랑카 6만이며, 필리핀이 125만 명으로 가장 많다.
어떤 조건에서나 기본권 존중돼야
이렇게 많은 인구가 ‘자발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며, 좋든 싫든 이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인식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현상이 바람직하냐 아니냐, 어느 정부가 좋아하느냐 마느냐와 관계없이 어떤 조건에서건 기본적인 인권이 존중되게끔 관리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이주 노동자 현상은 인력 송출국이건 수용국이건, 둘 다에 속하는 국가이건 간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역 전반에서 국제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국제사회는 이주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기준을 마련하였다. 90년 12월 18일, 유엔총회는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들 가족 구성원의 권리보호에 관한 조약(이주노동자 권리 조약)”을 채택하였다. 10년간의 작업과 협상을 통해 나타난 93개항의 이 조약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이주노동자 보호를 위한 국제법의 근거가 빈약하였다.
이주노동자 권리 조약은 “본인이 국민이 아닌 국가에서 보수를 받는 활동에 종사할 예정이거나, 종사하고 있거나,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2조)를 내리고 있으며, 조약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빛나고 있다.
첫째,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는 그들이 고용되어 있는 국가의 법이나 모국의 법으로 보호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둘째,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구성원의 범주에 대한 최초의 국제적인 정의를 보여준다. 또한 그들에 대한 처우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집단적 추방에서 보호될 권리(22조), 이주노동자의 지위나 지위의 변화로 인해 형을 부과하는 것에 반대하며, 이중과세로부터 보호(48조), 소득과 저축을 가지고 귀국할 자격(47조)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셋째,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나 경제적 존재만이 아닌 가족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넷째, 등록된 합법 노동자이건 아니건간에 기본적인 권리를 평등하게 적용한다는 원칙이다.
다섯째, 불법적이고 은밀한 이주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 평등하고 인간적이고 적법한 조건의 증진을 통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방지하는 것을 조약의 과제로 삼고있다.
여섯째, 결국, 조약은 최소기준의 확립을 추구한다. 자국 영토 내에서 누구에게 거주조건과 노동허용조건이 주어지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 국가의 권리로서 보호되지만, 국내보호기준이 미흡한 국가들은 국제적 최소 기준에 근접하게끔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90년 조약채택, 현재 6개국 비준
그러나, 이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여, 20개 이상 국가가 비준해야만 발효되는 이 조약을 받아들인 나라는 96년 현재, 칠레, 모로코, 필리핀 등 6개국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주 노동자 권리 조약에 대한 비준 노력을 비롯하여 송출국정부와 수용국정부, 민간단체와 국제기구에게 맡겨진 공통 과제와 특수한 임무는 우리 앞에 줄을 서 있다. 이주노동자의 실상에 대한 홍보와 교육, 배우자의 권리나 노동국에서 태어난 어린이의 권리, 가족 재결합의 권리, 노동계약과 작업장에서의 안전보장문제, 본국 송환 프로그램, 이주노동자 조직을 정책 참여자로서 인정하는 것 등 보내는 나라와 받는 나라, 이주노동자 자신을 위한 생산적인 노력이 외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