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7호선 하계역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를 돌아 중현초등학교 후문을 지나면 머리위로 경춘선 철길이 보인다. 바로 옆 동부간선도로에선 차들이 빗물을 뿌리고 달리고, 쏟아지는 빗속에 천막을 손질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영은교회가 어디있나요?”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교회는 보이지 않았다. ‘하계1동 재개발기구-동아건설’이라고 씌인 큼직한 간판을 중심으로 1천여세대가 살던 1만7천여평이 쓰레기장으로 변해 버렸다. 부셔진 집들 사이로 침대, 문짝들이 버려져 있고, 대문은 떨어져 나간 채 기둥만이 덩그런히 남아있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그들의 꿈도 부셔진 듯 하지만 이곳이 마을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듯 골목길이 드러나고 그 길을 따라가니 영은교회 팻말이 보였다. 물 안나오고, 전기 끊긴 양돈마을에 영은교회만이 유일한 보금자리이다.
“비가 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데도…”
87년 8월 이곳에서 목회를 시작한 오용식(44) 목사. 당시 6개월이었던 한샘이가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이곳 양돈마을에 철거가 본격화된 것은 96년 11월이다. 빈집들이 점차 부셔져가던 중 지난 4월 14일 밤 김용채 노원구청장 명의로 ‘행정대집행 명령장’이 날라 왔다. “4월 28일까지 이주하지 않으면 강제철거에 들어가겠다”는 경고장이었다.
4월 30일 강제철거가 들어왔을 때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구청측은 “재개발조합장의 직권이 아닌 주민과 상의하며 철거를 진행시키겠다”고 약속한 뒤 돌아갔다. 조합측과 구청, 주민들의 협상자리가 마련되었지만 결렬됐다. ‘충분한 대화와 협의 약속’을 해놓은 상황에서 9일 오전 교회만 남겨둔 채 30여 가구가 강제철거 되었다.
이에 ‘한국기독교 장로회 서울북노회 영은교회 철거대책위’가 나섰고 적준개발과 현장책임자, 노원구청측이 1주일간 말미를 주기로 해놓고서도 몇 차례나 철거반원의 급습에 긴장해야 했다. 가까스로 12일 구청측과 협상으로 ‘예배처소, 상가분양권 마련’에 긍정적인 합의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세입자 30세대, 가옥주 15세대등 50여 세대들의 대책은 여전히 막연하다. 더욱 답답한 것은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가옥주는 가옥주대로 대책마련에 부심한다는 사실이다.
세입자, 가옥주 두 목소리
세입자대책위 이성기 부위원장은 “우리의 요구조건은 주거권 즉 생존권 보장 한가지다. 반면 가옥주는 재산권 보장문제다. 무허가촌이지만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었다. 그 삶의 터전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양돈마을 이름 그대로 우리는 돼지쫓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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