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서울 퀴어영화제는 지난 9월 19일 개막 당일 서대문구청의 공연중지명령과 연대 동문회관측의 전원공급 중단이라는 일차적 이유로 인하여 사실상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차적인 직접적 이유가 영화제의 무산을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 영화제를 무산시켰던 힘은 레즈비언, 게이를 비롯한 성적 소수집단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들의 모습과 삶이 영화 속에서 그리고 문화 속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우리사회의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문화적 권력 전체입니다. 서울 퀴어영화제의 개최를 말단 행정기관인 서대문구청의 공연중지 명령으로 가로막으려했던 공연윤리위원회와 문화체육부의 태도는 주효했습니다. 우리는 상영기자제를 압수로부터 지켜내고, 상영작들을 압류 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영화제 전체 예산을 빰치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낼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합법적이었습니다. 상영작들에 대한 심의가 완료되지 않았고, 심의필증이 첨부된 공연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았기에 서울퀴어영화제는 불법적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합법적일 수 없습니다. 아다시피 우리가 합법적이고자 법에 순종하려는 순간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금지당하고 모두 저지 당하며 모두 부정됩니다. 동성애 관련 영화는 국민정서에 부합되지 않기에 심의대상에서 제외되는 끔찍한 심의기준의 적용대상이 됩니다. 심의와 검열의 따뜻한 세례를 받지 못한 서울 퀴어영화제의 상영작들은 당연 모두 불법적인 영화들입니다. 동시에 우리 시대의 반동성애적, 반민주적 상황을 인증하여 주는 문화적 가건물입니다.
이제 서울 퀴어영화제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서울 퀴어영화제를 금지하고 부인하는 한켠의 세력과 서울 퀴어영화제의 개최를 소망하고 긍정하는 또 한켠의 세력이 논쟁과 토론을 벌여야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서울 퀴어영화제의 미래는 영화제만의 미래가 아니라 다양한 성정체성을 긍정하고 다른 문화를 감싸안는 민주적 사회의 미래를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결국 서울 퀴어영화제의 개최자체를 허불허하는 법률이 문제가 아니라 그 법률이 근거하고 참조하는 낡은 사회적 가치와 규범이 이제 우리 모두가 풀어야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서울 퀴어영화제는 자신의 개최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사회적 집단이 존재하며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사고하고 체험하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며 그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질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만약 적어도 최소한 서울 퀴어영화제가 우리시대의 문화적 피의자임을 인정한다면, 그들에게 자신이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합니다. 그들의 주장을 듣고, 그들의 주장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만 그들에 대한 적대와 거부는 나름의 최소한의 합리성이라도 가질 것입니다.
1997.9.20.
제1회 서울 퀴어영화제 준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