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인권위 차별금지영역에서 눈부신 성과
호주 인권 및 기회균등위원회는 모범적인 국민인권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호주 인권위에는 국민인권기구에 관심있는 세계 각국 방문조사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호주 정부도 호주 인권위를 자랑거리로 알고 인권외교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민인권기구 포럼"의 결성을 주도하고 그 운영비를 대고 있을 정도다. 호주 인권단체들의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가장 비판적인 이들조차 "인권위는 유엔이 그렇듯이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평가를 내리곤 했다. 호주 인권위는 특히 차별금지영역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법원까지 가기에는 사소해 그냥 지나치곤 했던 각종 차별사건과 까다로운 재판절차로 말미암아 포기하곤 했던 차별사건들이 인권위를 통해 다뤄지면서 차별금지법제가 실효성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인권위의 주도 아래 차별금지법제 자체가 대폭 정비, 강화되었다. 나아가서 호주 인권위는 인권관련 소송에 선별적으로 참가함으로써 국제인권법에 대한 호주 법원의 관심과 수용 태세를 현저히 높여온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대규모 조사작업과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해 인권실태와 쟁점에 대한 이해를 높인 점도 호주 인권위의 성과로 꼽힌다.
차별금지법제 실효성 갖는 성과
한편 호주 인권위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한계를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첫째, 호주 인권위의 준사법적 권한은 현재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조약 사안, 즉, 시민·정치적 권리 위반 사안과 각종 차별금지법 위반 사안에만 미친다. 즉, 호주 인권위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조약 위반 사안에 대한 심결권을 갖고 있지 않다. 경제·사회적 인권 침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지출이나 정책 변경등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일개 위원회의 결정에 정부가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인 듯하다. 그러나 경제·사회적 인권을 인권의 구성요소로 파악하는 이상 이러한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한 경제·사회적 권리를 인권으로 파악하는 이상 그 보장과 실현에 타협이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권리 판정을 이행하는 데 반드시 정부의 특별한 예산지출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인권을 인권위원회의 관할대상에 포함시킬 필요는 우리나라와 같이 오랫동안 성장 일변도의 경제제일주의에 매달려온 나라들에서 더욱 절실하다.
사회경제적 인권을 관할대상으로
둘째, 호주 인권위원회의 결정은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93년의 브랜디 판결에서 호주 대법원은 행정부의 일원인 위원회의 심결에 구속력을 부여한 당시의 위원회법을 위헌으로 판시하였다. 그 결과 위원회에서의 심결과정은 법적으로 볼 때 전적으로 낭비다. 피진정인이 불복할 경우 진정인은 법원에서 1심 절차부터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원회는 여전히 연간 수백건씩 배상 결정을 내리고 있으며 피진정인들 역시 대부분의 경우 심결 내용을 이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 보수연립정부의 위원회 개편안에 따르면 위원회의 조정 노력이 실패할 경우 사건은 위원회의 손을 떠나도록 되어있다. 그나마 위원회의 심결권마저 박탈될 위기상황인 것이다.
셋째, 호주 인권위는 민간단체와 의견을 나누고 협력을 이끌어낼 공식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인권위를 구성하는 6인의 커미셔너 임명과정에 민간단체들이 공식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또한 인권위와 민간단체들간의 협의도 임의적일 뿐, 정례화, 제도화된 것이 아니다.
인권위와 민간단체 협의 임의적
넷째, 호주 인권위는 예산을 전적으로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예산상의 독립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여당에 밉보일 경우 인원과 조직이 대폭 감소될 수 있다. 실제로 호주 인권위는 현재 대폭적인 예산감축으로 인해 대대적인 인원 및 조직 축소 작업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위원회의 커미셔너 체제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호주 인권위원회를 구성하는 6인 커미셔너 각자는 각각 근거법령을 달리하는 독립관청으로 독자적 관할 영역을 갖는다. 예컨대, 장애차별 관련 사건이나 정책은 장애차별금지법에 의해 독립관청으로 임명되는 장애차별담당 커미셔너의 관할에 속한다. 실제로 호주 인권위원회는 공동사무국을 두고있는 독립관청 6개가 가끔 공동 관심사를 협의하는 구조로 보면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권한과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는 데 장점이 있지만 전체의 응집력이나 기획력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곽노현(운영위원, 방송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