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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자율과 개방’ 속의 평화

또 다른 부랑인 시설, ‘은평의 마을’


“다른 부랑인 시설은 제쳐두고 우리만 문제삼는다면 억울해서 따를 수 없다.” 양지마을 인권유린 행위의 사령탑인 양지마을 이사장 노재중 씨는 이렇게 항변했다. 그렇다면 모든 부랑인 시설이 양지마을처럼 운영될까? 21일 찾아간 부랑인 보호시설「은평의 마을」(은평구 응암동 소재)은 부랑인들도 자율과 개방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은평의 마을」은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그리스도수도회가 운영하고 있는 부랑인 보호시설로, 정신질환, 신체불구, 알콜중독, 노인성 치매, 결핵 등의 병을 앓고 있는 2천여명의 부랑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활짝 열린 정문과 낮은 담이 말해주는 이곳의 특징은 ‘자율과 개방’이다.

「은평의 마을」 수용자들은 공식적으로 3개월에 한번씩 외출을 하고 1년에 한번씩 1주일 간의 휴가를 갖는다. 또 시설에서 나가고 싶은 경우에는 담당 수사와의 면담, 심사위원의 심사 절차를 거쳐, 별 무리없이 퇴소가 가능하다. ‘어떻게 부랑인들을 함부로 내보내냐’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김 베드로 수사에 따르면,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일과 시간에는 봉투만들기 등의 단순작업을 하거나, 다른 환자를 돌보고, 축구나 수영을 즐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강제적이지 않다.

막노동을 하던 강청수(33) 씨는 올해 2월 종로구청에 요청해 「은평의 마을」에 오게 되었다. 그는 최근 들어 일이 없고, 오갈 데도 없어 예전에 머문 경험이 있는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현재 결핵환자들의 수발을 거들고 있는 강 씨는 “언제든 원하면 담당 수사님께 이야기하고 나갈 수 있지만, 마음이 편해 당분간은 있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같이「은평의 마을」 전반에 감도는 평화로움은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세에서부터 배어 나온다. 이 시설의 원장인 김규한 신부는 “철창 안에 가둬놓으면 오히려 위압감 때문에 사람들이 더 공격적으로 된다”는 말로 자율과 개방 속에 시설을 운영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굳게 닫힌 철문과 높은 담벼락 안의 양지마을 사람들에게 「은평의 마을」은 천국과 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랑인 보호의 근거가 되는 보건복지부 훈령 제523호에 따르면,「은평의 마을」은 특별한 곳이 아니라 규정에 충실한 곳일 뿐이다. 부랑인을 강제로 가둬둘 근거는 법과 훈령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 관련 전문가들은 부랑인 보호 시설이 원래 목적에 맞게 개방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희신경정신클리닉 김병후 원장은 “범죄행위 이외 다른 이유로 함부로 인신을 구속할 수 없다”며 “단 정신질환자들 중 증세가 중한 사람에 대해서 강제입원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그 경우에도 치료적 효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의 안녕을 위해 강제수용이 필요하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그건 단지 관리자들의 관점에서 편하게 통제하기 위한 말일 뿐”이라며, 부랑인들의 건강과 사회의 안녕 모두를 위해 시설을 개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부랑인 보호시설의 목적은 부랑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부랑인에 대한 인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