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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의 인권이야기] ‘시설로의 탈시설? 서울시의 탈시설 5개년 계획에 대하여’

마로니에 8인의 탈시설투쟁

2009년은 탈시설 운동에 있어 ‘한 획을 그었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 중심엔 이젠 고유명사 같은 ‘마로니에 8인’이 있었다. 바로 비리·인권침해로 문제가 되었던 비리재단을 상대로 투쟁해온 석암비대위 장애인당사자활동가 8명이 탈시설하여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 노성을 시작한 것이다. 왜 기껏 시설에서 나와 안락한 집도 아닌 공원 길바닥에서 노숙을 시작하게 되었냐, 반평생을 시설에서 살아온 8인에게는 돌아갈 집도, 집을 마련할 돈도 없었고 그에 대한 지원체계도 황무지수준이었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복지는 ‘장애를 가진 사람은 밥도 주고, 잠도 자게 해주는 시설에 입소하여 사는 것’이 최고였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국가가 아닌 민간의 사회복지법인과 그 산하시설에 온전히 맡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시설이 아닌 내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체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첫째, 탈시설을 지원하는 제도적으로 책임있게 이행하는 탈시설전환국을 만들 것, 둘째,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집을 마련할 것, 셋째, 자립생활에 필요한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을 늘리고 대상제한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며 마로니에에서 먹고 잤다. 또 사람의 삶은 ‘먹고 자는 것만’으로는 이어갈 수 없기에 서울시와 오세훈시장 상대로 ‘약속을 지켜라’하는 현수막을 들고 무려 62일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 결과, 비록 완전하진 않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탈시설을 지원하는 공적 체계인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가 만들어졌고, 2014년에는 ‘탈시설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시설로의 탈시설(?) 5개년 계획

서울시는 2013년부터 5년동안 서울시 관할 시설거주장애인의 20%인 600명을 자립 지원하겠다는 어마어마한 ‘탈시설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세부계획은 전환주거 확대, 주택 공급, 거주시설 장애인 퇴소자 자립정착금 증액, 일자리 지원 등이다. 이렇게 보면 600명 탈시설 로드맵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하지만 구체적인 추진계획은 다소 이상하다. 사실 이상한 점(이나 개인적으로 맘에 들지 않은 점)은 너무나 많지만 오늘은 그 중 특히 이상한 두 가지를 이야기 해보려 한다.

서울시의 탈시설 5개년 계획은 사실 그 구성부터 이상하다. ‘시설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체험홈과 공동생활가정이 ‘탈시설’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데, 5년 동안 총 74개나 확충된다. 더욱이 이 시설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탈시설 목표인원 600명 중 반을 넘어선 314명이다. 이는 ‘시설에서 퇴소’하여 자립생활주택에서 살아가는 171명에 비해 2배나 된다. 아, 헷갈리지 마시라. 이는 시설 5개년 계획이 아니라 서울시가 발표한 탈시설 5개년 계획이 맞다.

잠시 상상해보자. 사회복지법인 산하 장애인거주시설A에서 20년을 살아온 장애인이 오랜 고민 끝에 탈시설을 결심하여 시설에 의사를 밝힌다. 그랬더니 시설측은 퇴소절차 및 자립 후 필요한 서비스안내를 하는 게 아니라 시설A에서 운영하고 있는 자립생활체험홈 A-1을 안내한다. 자립생활체험홈 A-1엔 시설A에서 20년을 봐온 생활재활교사가 자립팀장으로 여전히 그이의 일상활동을 돕고, 그이의 수급비는 여전히 법인통장에 지급된다. 이상하지 않나? 그러나 서울시가 제시한 행정적 기준대로라면 그이는 ‘탈시설’한 것이 맞다! 와, 탈시설 그럴듯하쥬?

또한 최근 머리가 지끈거리는 논의 중 하나는 자립생활주택의 운영주체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안 그래도 복잡한 개념들은 여기서 특히 복잡하니 집중해주셔야 한다. 자립생활주택은 그동안 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운영해온 자립생활체험홈과 서울시 복지재단이 운영해온 자립생활가정을 자립생활주택으로 운영주체를 일원화한 개념이다. 작년까지 체험홈이란 개념을 시설, 센터 모두 혼용하여 사용해오다 운영주체의 구별을 위해 올해부터 ‘자립생활주택’으로 용어를 분리했다.

그런데 이 자립생활주택의 운영주체마저 시설에 활짝 열리게 되었다. 물론 운영주체기준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사회복지법인’이라 명시되어 있으나, 이는 법인이 장애인거주시설을 운영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 대체 이 탈시설 계획의 목표는 무엇일까, 심각하게 고민해봐도 답이 없다. 사실상 거주시설은 자립생활체험홈과 자립생활주택 모두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체 자립생활체험홈과 자립생활주택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왜 용어를 분리한 건지 혹시 내 두통유발을 위한게 아닌지 음모론을 떠올릴 정도다.

법인, 곧 거주시설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공간확보에 필요한 비용도, 운영비도 모두 지원되니 돈 들이지 않고 운영할 신규시설 하나를 더 확보하면서도, 최근 주목받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충실히 지원하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최근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자립생활주택 운영사업자 선정기준을 만드는 자문회의에선 시설화 확대의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논의되는 선정기준 중 행정능력에서는 생뚱하게도 상근인력 수, 산하시설의 개수를 평가하며, 재정능력에서는 자부담이 중시되는 점 등은 오히려 산하시설 몇 개를 거느린 대형법인이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충족하기 어렵다. 필요한 탈시설 인프라를 만들어가는게 아니라 기존의 운영능력이 검증된 짱짱한 시설들을 탈시설계획의 주체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시설을 떠나 지역사회로의 자립을 원하는 사람은? A라는 시설에서 B라는 지역사회로 나가고 싶다 했는데 A-1이나 A-2나 A-3에 가야하는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헉! 이쯤되면 서울시의 탈시설은 또 다른 시설로 가기 위한 탈시설을 말하는 게 아닐까?

탈시설 철학에 기반한 탈시설 정책을!

자립생활체험홈이든 공동생활가정이든 법인 산하의 자립생활주택이든 거주공간의 운영주체가 ‘시설’인 점은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시설에서 사는 한에는 자립생활에 필요한 수급비와 활동보조서비스를 개인이 권리의 주체로서 이용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는 탈시설이라 보기 매우 어렵다. 혹여라도 이 계획을 두고 현실적인 탈시설‘화‘의 일환이라면, 대형거주시설에 대한 장려책이라 이야기한다면 더더욱 잘못된 흐름임이 분명하다. ’탈시설‘은 현재 거주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탈시설·자립하여 사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지역사회에서 더 이상 시설로 입소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도 의미한다.

그동안 전무했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엔 다양한 시도와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제도안에서만 방법을 찾아가는 것들은 한계가 많다. 그것이 ‘탈시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존의 시설수용중심의 정책과 그를 둘러싼 견고한 권력관계, 이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 끊임없는 질문과 구체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이에 나아가는 한걸음으로 서울시는 시설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제도와 지원체계상의 저해 요인들 때문에 자립을 망설이는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하루빨리 탈시설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가고, 이를 바탕으로 누구든 지역사회에서 자신이 꿈꾸는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 ‘또 다른 시설로의 탈시설’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 지역사회로의 탈시설’을 위한 서울시 탈시설 5개년 계획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임

조아라 님은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