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8일 오후 2시, 숨죽인 움직임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이날은 사회적으로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지자체에 낸 손해배상 항소심 선고가 있는 날이었다. 재판에 관하여 설명을 덧붙이자면,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가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7명으로부터 법률적 권한을 위임받아 대한민국 정부,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국가손해배상청구를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1심, 2심에서 패소판결을 냈고, 이번 항소심에 대한 선고에서도 원고의 항소에 대해 모두 기각, 패소판결을 선고했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인화학교 교사에 의한 성폭력과 광주광역시 공무원에게 받은 명예훼손에 대해 범죄 발생일로부터 5년이 경과하였기 때문에 시효소멸로 기각하였다. 또한 2005년 경찰의 미온적 수사로 가해자가 불기소 처분되었던 것에 대해서는 경찰이 일부러 사건을 장기화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교육부의 관리·감독 부실이 결국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까지 이어졌다는 책임을 묻는 항소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의 관리·감독과 이후 처분이 미흡한 것은 일부 인정되나 법령에 위반할 정도로 소홀하거나, 타당성을 잃을 정도의 과실이 아니라며 기각하였다. 이외에도 지자체의 부적절한 대처들이 사건을 발생시켜 피해를 야기했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아무도 몰랐다, 정말?
한 장애인 시설에서 15년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밖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몰랐던 이들 중엔 그를 마땅히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지자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알았다 할지라도 덮어졌다. 지금까지도 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는 만연하며, 당시에는 더더욱 행정적으로 인권침해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후 사건을 인지했을 땐 무엇을 했나? 광주시는 2011년 인화학교의 사회복지우석법인에 대해 법인설립허가취소를 결정했다. 하지만 시기를 보시라. 광주시는 법인설립허가취소를 2005년 사건이 드러난 즉시가 아니라 ‘도가니’ 영화로 이 사건이 알려지고 그야말로 온 세상이 분노의 도가니로 들끓었던 2011년에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사건을 인지한 후부터라도 7년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번 법원의 선고는 무엇인가? 시효소멸,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매우 보수적이고 편협한 이유를 들며,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가려버렸다.
정부는 무얼 했는가?
정부는 2011년 당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계기로 여러 관계부처와 논의하여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대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이 계기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률이 강화되고, 정부는 대대적인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까지 진행했다. 그런데 그뿐이다. 실태조사에 대한 결과조차 발표되지 않았으며, 매년 반복되는 문제들에 비해 해결책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해결사례는 미비하다. 제대로 된 해결책은 없이 형식적인 조사만 반복되다 보니 여전히 뉴스 기사에 ‘도가니’를 검색하면 ‘XX판 도가니’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도가니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다. 시설 인권침해가 어느 한 개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해?
누군가 물어볼 것이다. “그 도가니를 만드는 개인들이 나쁜 거지, 거기에 국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해?”라고. 그렇다. 개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에 마땅한 값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가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더구나 이미 드러나 구조적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마땅한 해결책을 내지 않는 건 명백히 의도적인 방임이자 방치다. 나아가 국가는 단순히 관리·감독의 책임과 문제에 대한 해결뿐만 아니라 그 문제가 일어나지 않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러한 국가의 존재 이유에 충실한 정책 실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도가니는 계속될 것이다.
덧붙임
조아라 님은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