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안돼!
[ 제 1조 :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나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 ]
[ 제 2조 :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국민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 지위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고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나아가 개인이 속한 국가 또는 지역이 독립국이든 신탁통치지역이든 비자치지역이든, 또는 어떤 주권제한 하에 있든지, 그 국가 또는 지역의 정치적, 사법적 또는 국제적인 지위에 근거한 어떤 차별도 받지 않는다. ]
세계인권선언(이하 선언) 제1조와 2조는 이후 3조부터 30조까지 규정된 모든 권리의 대전제에 해당한다.
제1조는 우선, 인권이란 ‘타고난’ 것으로서 양도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보편적인 권리라는 전문(前文)의 명제를 거듭 확인한다. 인권은 곧 자연법에 기반한 권리로서 현실의 법(실체법)보다도 우선한다는 점, 거꾸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부정하는 어떠한 법률도 정당할 수 없다는 점을 대전제로 천명한 것이다. 또한 제1조의 둘째 문장은 보편적 인권이란 ‘인류애의 정신’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지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제2조는 선언에서 규정된 모든 권리의 ‘적용’에 있어, 어떠한 근거의 차별도 허용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선언한다. 엄격히 말해 반드시 차별금지 규정을 인권규범에 포함시키거나 차별의 근거들을 열거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선언 제2조에서 ‘차별 금지’를 일반원칙으로 규정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벌어져온 인권침해의 구실이 바로 ‘차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별금지의 구체적 기준을 언급하는 것은 곧 평등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모든 인권문서마다 상당한 분량으로 차별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주요 국제조약들이 차별금지의 원칙을 일반원칙으로 채택한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다. 선언에서 특별히 남녀평등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은 그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B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A규약)에서 ‘남녀평등 조항’을 독자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보완된다.
이처럼 차별금지를 선언한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은 우리 헌법과 법률 속에도 반영되어 있다.
헌법 제11조 1항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며 차별금지를 명문화했다. 또, 헌법을 보완하는 법률적 진전도 꾸준히 이뤄져 왔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에서 차별금지를 명문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암묵적, 노골적 차별행위는 엄존하고 있다.
헌법에서 금지한 연좌제가 최근까지도 이어져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복역중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인이 교사임용에서 탈락했던 사례는 관행적으로 사상에 대한 차별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을 가진 우리 현실에서 특정한 사상적 경향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가장 빈번한 인권침해행위로 남아 있다.
또 세상의 절반,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은 여전히 높은 차별의 벽 안에 갇혀있다. 최근 직장 내 여성 우선해고 문제는 가장 심각한 여성차별 관행으로 꼽히며, 특히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호주제도는 우리 법률상 대표적인 차별입법으로 비판받고 있다. 호주제도는 1년에 3만명에 달하는 여아낙태와 성비불균등 사태라는 또 다른 인권문제를 가지치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 역시 상존한다. 장애인에겐 고용의 기회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해외투자기업 연수생’이라는 이름의 외국인노동자들은 연수생제도의 허점 속에 합법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
앞서 세계인권선언과 우리 헌법은 각각 차별금지의 근거를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선언과 헌법에 열거된 근거들은 ‘대표적 예’에 불과할 뿐, 그 밖의 차별을 묵과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돼서는 안된다.
00도 출신이라는 것이, 화교라는 것이, 대학을 못 나왔다는 것이, 얼굴이 못 생겼다는 사실이, 병을 앓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전과가 있다는 사실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 한편에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차별의 근거들도 하나둘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에 싹튼 동성애인권운동은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새로운 차별의 영역으로 등장시켰다.
평등을 향한 중단없는 전진을 위해,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선언과 헌법의 이름 아래 금지될 수 있도록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