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 민가협 오찬모임서 밝혀
지난 23일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민가협 의장단 및 회원 20명과 오찬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국가인권위 설립 등 각종 인권현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민가협은 이번 간담회에서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독립된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의문사문제 등 과거청산 △사면복권 및 수배해제, 양심수 군문제 해결 등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고, 이 가운데 김 대통령이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국가인권위 설치 문제였다.
민가협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인권위원회를 국가기관으로 설치할 경우, 공무원 증원에 따른 예산 증가와 정부 산하 단체라는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민간에서 국가기관으로 만들 것을 계속 요청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 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과 관련, 민간단체와 국민회의 측은 독립된 국가기구로서의 위상을 요구한 반면, 법무부는 특수법인 형태를 고집해왔다. 민가협 측은 “대통령이 국가인권위 설치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며 “민간단체들이 좀 더 적극성을 띤다면 독립된 위상의 국가인권위를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보법 종전 입장 되풀이
국가보안법 문제와 관련, 김 대통령은 “최근 유엔에서 국보법 제7조가 인권조약 위반이라고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멀지 않은 시기에 이 문제를 처리할 것이며 법무부에 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보법 처리의 형태와 그 시점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 이와 관련 민가협 측은 “대통령에게 ‘대체입법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며, 어떻게든 국가보안법 문제를 쟁점화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을 재삼 확인했다”고 말했다.
준법서약 철회의사 없는 듯
양심수 문제에 있어서, 김 대통령은 “아직 양심수가 많이 못 나왔다”고 말하며 양심수 석방의 의지가 있다는 점만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가협은 비전향 초장기수(29년 이상 구금자)와 강용주, 조상록 씨 등 장기구금 양심수들을 포함해 양심수 전원의 석방을 요청했으나, 김 대통령은 “3․1절에 대사면을 하고 싶다”는 언급 외에 구체적 답변은 피했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준법서약제와 관련, 김 대통령은 “지난해 8․15 때 다 해결하고 싶어 고심 끝에 만든 건데…여기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는 3․1절 사면에서도 준법서약서를 석방기준으로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현 정부에서도 양심수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사실상 사상전향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다는 민가협 측의 지적에 대해, 대통령은 아무 반응도 나타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가협 측은 “이날 모임에 참석한 양심수 가족들이 많은 기대를 갖고 돌아왔지만, 준법서약제로 인해 다수가 석방되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과거청산 인권위에서”
그밖에 수배자 및 미사면복권자와 관련, 김 대통령은 “복권되지 못한 사람은 다 복권시키고 도피중인 사람도 다 해방되길 바란다”고 말했으며, 의문사 및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해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민가협측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