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각 학교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교육벌'이라는 이름으로 체벌 기준을 만들었다.
어떤 도구로 어디를 몇 대 이상 못 때리며 따위를 규정하는 식이었다. 물론 학부모 단체는 이런 기준조차 부정하고 있다.
교사들이 좀더 노력하면 학생들을 충분히 이성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데, 교사들이 너무 손쉽게 체벌에 의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 단체의 주장은 체벌을 교사 개인이 지닌 폭력성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체벌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기 쉽다.
체벌이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은 교사와 학생에게 문제가 많고 과거보다 심성이 폭력적으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에서 그 동안 교육분야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아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 심신이 옛날과 같지 않은데도 학교 여건과 구조가 몇십 년 전 상황과 거의 다름없다.
'19세기 교육 여건' 속에서 '20세기 교사들'은 한 교실에 '21세기 학생' 50여명을 앉혀 놓고 나라에서 정해준 수업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이 50명이란 숫자는 교사 한사람이 자기 능력을 제아무리 힘껏 발휘한다 해도 '인성교육'은커녕 학생 50명을 떠들지 못하도록 제압하며 '획일적인 지식' 하나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숫자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교실을 더 짓고, 교사를 더 뽑아 서구 선진국처럼 교사와 학생이 이성적으로 만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 50명의 인격을 존중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들에게 획기적이고 특수한 수업 기술을 일러주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가가 해야 할 이런 몫을 국가에서 제대로 실천한 적이 없었다.
교사들이 각자 알아서 지도하라며 방치해 왔을 뿐이다. 오히려 오늘날 교사들은 '영어교육강화, 정보교육 강화' 같은 정부 지시에 가르쳐야 할 학습량이 더욱 늘었으며, 쏟아지는 공문에 파묻혀 상급 관청에서 내려오는 지침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래서 옛날보다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이 오히려 더 적어지고, 학생 문제로 고민하기는커녕 전문 서적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날 그날을 겨우 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교육 여건과 구조를 개선하려 하지 않고 학생들을 인간적으로 잘 가르치는 교사에게 '성과급'이란 이름으로 돈을 더 주겠다며 체벌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교사가 이를 악물고 대들어도 안 되는 상황을 정부가 잘 알면서 교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왜 때리는가'를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지금처럼 '어떻게 때리자'만 논의하고 있어서는 체벌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가 교육 여건과 구조를 개선하려 하지 않으면서 체벌 교사를 문책하겠다는 식으로 나간다면, 교사들은 이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말거나, 알아듣거나, 말썽을 부리거나 말거나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한효석(부천정보산업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