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병원이 문을 닫았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서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직업상 서너 종의 일간 신문은 꼼꼼하게 읽는 내가 이 사태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꽤 오래 전부터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약분업에서 쟁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양쪽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잖게 말하는 사람들은 "그거, 밥그릇 싸움이지 뭐." 했고, 거칠게 말하는 사람들은 "배부른 XX들이 밥그릇 지키려고 하는 거야." 했다. 조금 조리 있게 설명하는 사람은 "시민의 건강을 볼모로 밥그릇을 챙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교과서를 외우듯이 말하기도 했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사태를 이리저리 따져보는 사람은 없었다.
'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나는 그때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내가 평소에 핏대를 올리며 옹호했던 '밥그릇 싸움의 정당성'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배부른 자'들의 것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밥그릇 싸움'의 당당함에 대한 믿음을 쉽게 버리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신화'에 굴복한 것이다.
물론 한끼 식사를 위한 밥그릇 싸움과 아파트 평수를 넓히기 위한 밥그릇 싸움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 엄정함과 절실함의 차이를 어떻게 무시할 것인가? 그러나 배부른 자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함부로 매도하거나 조롱할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그들의 밥그릇과 이기주의를 인정하고 합리적으로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배부른 자들의 큰 밥그릇을 차지하는 싸움을 조롱하는 데 쓰이는 무기가 장차 배고픈 자들의 작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제압하는 데 요긴하게 쓰일 것이기 때문에.
박복선 (우리교육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