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10시, 광주 망월동에서는 대통령과 각계 인사 2천3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그러나 기념식에는 정부에서 초청한 인사들만 참석할 수 있었고, 많은 시민들은 기념식장인 신(新)묘역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했다. 묘역 주변에는 경찰이 물샐틈없이 배치돼 있었다. 또한 광주 시내나 담양 쪽에서 망월동으로 오는 시내버스들은 모두 아침 일찍부터 차단됐기 때문에 자가용이 없는 시민들은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만 망월동 묘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씨벌, 대통령이면 대통령이지 5․18을 독식해? 그만 이용해먹으라고 해!"
신묘역 주변에서는 기념식에 참가하거나 참배하려는 시민들과 "질서유지를 위해 협조를 부탁"하는 경찰 사이의 실랑이가 끊일 새 없었다. 오전 10시 30분에야 구묘역 입구에 다다른 전계순씨(62, 86년 분신한 이재호 열사의 모친)는 "담양쪽 입구에서 20분이나 걸어왔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97년 이후 정부가 기념식을 벌일 때마다 기념식장에 들어가려는 시민들과 경찰 사이의 실랑이는 연례행사다. 올해는 특히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해서 경호가 더 삼엄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5․18 유족이야. 우리 아들 묘에도 못 가냐? 계엄군과 싸울 때 넌 뭐 했어!" 어느 시민이 호통을 치면서 경찰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신묘역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민들과 외지 참배자들은 구묘역(광주시립공원 묘지 제3묘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80년 당시 계엄군에 맞아 숨진 시민군들을 쓰레기차에 실어다 묻음으로써 만들어진 구묘역엔 이제 이한열, 이철규, 이내창 등 8,90년대에 산화해간 열사들과 의문사한 이들의 무덤이 있고, 그 앞에는 변함 없이 유가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신묘역으로 옮겨간 5․18 희생자들의 묘는 허묘 형태로 그대로 있지만, 국화 한 송이 제대로 놓여져 있질 않았다.
5월에는 신묘역에 가지 않는다는 송득용 씨(36․추모단체연대회 호남지구협의회 사무국장)는 "여기가 역사의 현장인데, 현장은 버려 두고, 왜 외양만 화려한 신묘역에서 기념식을 갖는지…"라며 서운한 심기를 토로했다. 5월 열사들이 돈에 팔려간 것도 같고, 너도나도 5.18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잇속이 훤히 보이는 게 싫단다.
그 시각 대통령은 광주의 4대 정신(인권, 철저한 비폭력, 성숙한 시민, 평화)을 역설하며 5․18 희생자들을 유공자로 예우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이 기념식수를 마치고 떠난 오전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까지 참배객들은 신묘역에 접근하지 못했다. 5․18 20주년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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