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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브라질 세계사회포럼 참관기


'뿌끼'라는 대학 구내에 자리한, 정사각형 모양의 넓디넓은 실내 회의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약 4천명의 사회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 곧이어 브라질 민속음악 공연단의 북소리와 공연자의 리드미칼한 몸동작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자 회의장안의 웅성거림도 잦아들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고무하기 위해 매년 연초에 개최해오고 있는 다보스포럼에 대항해서 올해 처음 열린 브라질 포토알레그레에서의 세계사회포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자들의 회의에 맞선 포럼

개막식에선 조직위 관계자들의 발언, 노동자당 출신인 포토알레그레 시장과 리오그랑두술 주지사의 발언, 프랑스 아탁(외환거래 과세운동 단체) 대표 베르나르 까생의 간단한 발언 등이 이어졌다. 그리고 각국 참가자들에 대한 소개. 브라질과 쿠바 참가자가 소개될 땐 장내가 떠나갈 듯한 환호가 터졌고 미국참가자들에게는 장난섞인 야유가 쏟아졌다. 콜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 힘겹게 투쟁하고 있거나 투쟁했던 남미 제국 참가자들에게는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개막식이 끝나고 시위행진이 벌어졌다. 1-2만쯤 되는 시위대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전차선을 점거한 채 약 3-4킬로미터를 행진했다. 삼바리듬의 북소리에 연신 몸을 흔들어대면서 가는 사람들, 웃옷을 벗어제낀 사람들, 닭벼슬같은 머리모양을 한 사람 등 시위대의 모습은 매우 다양했다.

길거리 건물에서의 환호도 대단했다. 휴지를 찢어서 날리는 사람들, 각종 깃발을 흔들어대는 사람들. 시위에 참가한 조직도 다양했다. 브라질 노총 조합원들, 사회단체 활동가들, 노동자 당 및 여타 좌익 정당 당원들, 그리고 초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중간에 대열에 끼어들면서 약간 긴장을 조성한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주제 논의

개막식 다음날부터 4일간 본격적인 회의와 워크숍들이 진행됐다. 4개 대형 회의장(7백-1천5백 규모)에서 진행된 조직위 기획 토론회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관련된 각종 주제들(토빈세 도입, 외채탕감, 국제 금융기구 통제 등 금융세계화 관련 쟁점들, 자유무역체제의 문제점, 토지개혁과 관련한 문제들) 외에도, 대안 주체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대안 사회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등의 새로운 주제들이 논의됐다. 4백50개에 달한 소규모 워크숍에서는 진보진영에서 제기될 수 있는 그야말로 모든 쟁점들이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접근법'에서 '개량이냐 혁명이냐'까지.

마지막에 채택된 결의문은 이번 사회포럼 참가자들이 시애틀 투쟁 이후 성장해온 세력의 일부임을 천명하면서, '다른 세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녀평등 △아프리카 흑인 및 원주민 운동에 대한 연대 △외채전면탕감 △토빈세 도입 △민영화 반대 △생존권 및 노동권 보장 △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 반대 △농업개혁 △군사주의 반대(및 콜롬비아 계획 반대) △국제 기구들의 조치에 대한 반대 등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브라질 운동사회의 풍부함

이번 사회포럼은 대체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식 참가자 4천명 이외에 일부 회의 참가가 제한된 준참가자 브라질인 1만6천명을 합하면 연인원 약 2만명이 이번 포럼에 참가한 셈이다. 조직위 예상치의 배가 넘는 규모란다. 내용적으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이 포괄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모색됐다. 이렇게 진지한 대안모색이 가능했던 것은 시애틀 투쟁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세력의 계속적인 성장 덕분일 터이다.

포럼 성공의 배경에는 브라질 운동사회의 풍부함도 존재했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민중교육운동, 보프신부와 기초공동체로 상징되는 해방신학의 전통, 5백만 조합원(단협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1천9백만)의 브라질 노총, 약 1백90개 시에서 집권하고 있는 브라질 노동자당, MST(땅없는 사람들)의 토지점거운동(이 농민단체는 포럼기간에 미국 다국적업체 몬산토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를 점거해 그 활동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등. 이런 토대 위에서 외채지불 거부 국민투표운동이 가능했고, 포토알레그레 시정부의 참여예산계획이 가능했으며, 그리고 이번 사회포럼의 성공이 가능했다. 이번 사회포럼은 노동자당이 집권하고 있는 리오그랑두술 주와 포토알레그레 시의 일종의 '관변 행사'였던 것이다.


다음 싸움, 올 4월 퀘벡에서

그러나 이번 행사에도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번 사회포럼을 가능케 한 인사 중의 하나인 프랑스 아탁 대표 까생은 자신이 사회를 맡고 있는 토론회에서 프로그램에도 나와있지 않은, 진보적이라 할 수 없는 전직 프랑스 장관을 소개해 발언기회를 주는 등 돌출 행위를 몇차례 했다. 그런데 이 돌출 행위가 단순한 돌출 행위가 아니라는 점만 지적해두기로 하자.

그렇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개최된 포토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은 다보스포럼을 무색하게 하고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촉매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당연히도 전적으로 우리 전세계 사회운동세력의 싸움에 달려있다. 그 첫 싸움은 올해 4월 캐나다 퀘벡에서 열릴 아메리카자유무역지대 회담을 둘러싼 싸움이 될 것이다. '움 아우뜨로 문도 에 뽀씨벨'(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박하순(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