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다시 얼굴을 맞대고 앉은 곳이 경찰서 유치장이라니…. 아들은 수배생활 4년을 보내고 손목에 수갑을 차고, 아버지는 수술도 못한다는 의사의 ‘말기 암’ 진단을 뒤로하고 병과의 투쟁을 시작하고 계셨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금 대구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98년 6기 한총련 의장 손준혁(29) 씨가 부친 손영상(64) 씨에게 보낸 안타까운 편지 내용이다.
손 씨는 올해 5월 21일 전남도경 보안수사대에 붙잡히기 전까지 4년 동안 수배생활을 해왔다. 가족들과 생이별했던 손 씨가 경찰에 붙들리고 나서 맨 처음 알게된 소식은 부친이 ‘담도암 말기’라는 사실. 마른 하늘에 날 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외아들인 손 씨는 당장이라도 집에 들어가 부친을 간병하고 싶었지만 자신은 공안당국에 의해 ‘이적 단체를 구성한 한총련 의장’이라는 혐의를 받는 몸.
일분 일초가 아까운 아버지와 아들이 그동안 만난 횟수는 경찰 유치장에서 만난 단 한 번이다. 부친의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전립선에까지 암세포가 퍼져 면회마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부친은 손 씨 연행 당시 보다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이상 줄었으며 지금은 음식물 섭취조차 못해 주사영양제를 맞고 있다.
손 씨 연행 직후 대구지역에선 양심수 후원회, 영남대 민주동문회, 대구경북지역총학생회연합, 영남대 재학생을 중심으로 ‘손준혁학생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대책위원회’(공동대표 함철호)를 꾸리고 손씨에 대한 석방․탄원 운동에 들어갔다. 대책위는 결성이후 청와대․법무부․국회 등에 탄원서를 발송하고, 6월 14일에는 민가협 목요집회에 참석해 서울 시민들에게 손씨의 ‘한 맺힌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손씨는 16일 국가보안법 7조 이적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한편 손 씨 부친은 치료차 있던 암 환자 요양소에서 ‘있어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지금은 집에서 투병중이다. 그가 간간이 대책위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은 “아들놈 때문에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넌지시 “그래, 우리 혁이는 언제쯤 나올 수 있더냐”라고 묻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송구스러을 뿐이다.
대책위 사무국장 곽은경 씨는 말한다. “25일부터 한나라당 대구시지부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은 간혹 지나가다 ‘힘내라’하시며 음식물을 전해 주곤 하죠. 그런데 정작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준혁이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있어요. 정말 화가 나요. 준혁이 아버님은 점점 몸이 안 좋아지는데, 옆에서 보기가 어찌나 죄송한지…” 떨리는 목소리에 말끝을 흐리는 그다. 손씨 가족과 대책위는 이번 주에 손 씨에 대한 보석을 신청 할 예정이다. 보석 신청을 하며 손 씨 부친에 대한 의사 소견서와 영남대 총장․교수들이 작성한 의견서도 함께 제출할 계획이다. 국가보안법이 갈라놓은 아버지와 아들. 생이별 4년을 강요한 국가보안법이 오늘도 두 사람의 마음을 산산이 갈라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