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이용호 사건 등에 온통 이목이 쏠린 요즘, 음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 전하고자 한다. 98년 여름 우리는 충남 연기군의 부랑인수용시설 ‘양지마을’에서 참혹한 인권유린의 실상을 목격했다. 납치나 다름없는 강제수용, 쇠창살 속의 불법감금, 강제노역과 착취, 구타와 가혹행위 등 수용자들에게 그곳은 거대한 ‘노예선’이었다.
양지마을의 실상이 폭로된 결과, 2백여 명의 원생들이 자유를 찾았고, 양지마을 원장은 구속․처벌됐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었다. 수년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탓에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기 힘든 피해자들에게는 마땅히 ‘재활’의 수단이 필요했다. 금전적 배상이 시급했던 이유도, 그것이 새출발을 위한 ‘물질적 기반’이자 ‘희망의 싹’이었기 때문이었다. 99년 7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던 피해자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을 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소송이 제기된 후 2년이 넘도록 법원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지난해 12월 이후론 단 한 차례의 심리공판도 열리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재판지연의 책임을 관할관청인 ‘연기군청’ 쪽에 넘기고 있다. 소송 제기인들의 ‘수용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제출되지 않아 더 이상 심리를 진행할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무려 9개월 전에 요청된 자료를 지금껏 제출하지 않는 연기군청 쪽의 태도를 어떻게 납득하고 있는지 재판부에 되묻고 싶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재판진행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재판부는 단호히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불과 6개월 전, 대법원은 ‘민사사건 관리 모델’ 지침을 만들어 일선에 하달했다고 밝혔다. “민사재판절차를 획기적으로 간소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지마을 재판에서는 그러한 지침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양지마을 퇴소 후 3년, 손배소송제기 후 2년이 지나면서, 양지마을 피해자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소송결과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 “새 삶을 살아보겠다”던 희망을 접은 채 다시 ‘부랑인’으로 돌아간 사람들. 양지마을 피해자들에게 있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는 곧바로 ‘생존의 권리’이다. 재판부에 거듭 묻는다.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