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억압'은 덜 억압적일까?
신자유주의적 권력의 속성이 규제를 완화하면서 통제의 빈 부분을 '책임자율성'이나 '성과급'과 같은 심리적인 통제와 자발적인 참여로 메꾸고 있다고 한다면 현대 기술은 그 천생연분이다. 특히 감시 기술과 같은 현대의 통제 기술은 언제나 '정치적인 중립성'을 내세우면서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인터넷내용등급제가 과거의 사전 검열보다 더욱 무서운 검열 제도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은 공권력이 과거와 같은 사전 검열을 할 수 없는 새롭고도 강력한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술적인 방식의 검열을 통하여 그들의 통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이제 그들의 법에는 "건전한 홈페이지만 유통하라"는 노골적인 문구는 없으며 '청소년에게 유해한 홈페이지는 픽스(PICS) 등급을 달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 법에 호응하기 위하여 피씨방, 학교, 도서관에 픽스 등급을 인식하는 차단 소프트웨어들이 널리 보급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 말에 따르면, 이것은 '자율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게 될 일은 이렇다. 나의, 혹은 우리 단체의 홈페이지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으로 판정되어 피씨방, 학교, 도서관에서 혹시라도 차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앞으로 자기 검열을 해야만 할 것이다. 홈페이지가 성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권력이 가지고 있는 기준과 늘 비교해야 한다. 사고의 틀이 제한되는 것이야말로 규율 권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억압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바야흐로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기술적 수단에 의하여 정부의 의도가 '사실상' 관철되는, 새로운 검열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로렌스 레식이라는 법학자는 '보이지 않는' 픽스가 과거의 검열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웹 인프라의 일부로 작동하면서 개인이용자, 프록시서버, 인터넷서비스제공자 그리고 국가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식과 내용을 생산하는 방식, 궁극적으로는 넷의 구조 자체에까지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레식은 이런 환경이 과거 '보이는' 국가의 검열과 씨름해 왔던 활동가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 상황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사회단체간에 일년여 간이나 입씨름이 계속되어 왔지만 인터넷내용등급제 시행을 목전에 둔 지금 이 시점에도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잘 모르고 있다. 정부의 '중립적이고 자율적 기술' 논리에 밀린 탓일 게다. 그러나 "법처럼, 소프트웨어는 가치중립적이 아니다"라는 레식의 말이 옳다. 언제나 문제는 심층적인 권력 관계인 것이다.
(장여경 씨는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