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가 닻을 올린 첫날, 그 사무실은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호소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어디에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소외된 사람들이 국가인권위에 거는 기대는 그만큼 큰 것이었다. 그로부터 100일이 넘게 지났다. 하지만 이렇다 할 활동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조직·인원 규모에 대한 다른 부처들의 반발로 정식 사무처 직원이 없이 출범할 때 어느 정도의 지연은 예상했었다. 그리고 "당분간 인권위 업무가 기대에 미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던 인권위의 처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출범 후 100일이 훌쩍 지난 지금 과연 인권위가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 잇따른 재소자의 죽음에 가족과 인권단체들이 조사를 호소했을 때 인권위는 어디에 있었는가? 법무부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할 때, 무엇을 했는가? 정부 부처들이 똘똘 뭉쳐 파업 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몰아붙이는 이 때, 왜 한마디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지도 궁금하다. 파업 행위를 범죄시하지 말라는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국가인권위마저도 외면할 셈인가. 사무처에 정식직원이 없는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미 다섯 달 전에 임명된 인권위원들은 뭘 하고 있는가.
인권단체들과 협력해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인권위의 활동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 무엇이며 무엇을 계획하고 고민하고 있는지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회의가 언제 열리고 무슨 안건을 의
결했는지도 좀체 알 수 없다. 회의를 공개하는데 소극적인 모습은 또 하나의 관료조직의 출현을 우려케 한다. 인권위의 투명한 운영과 활동을 기대하는 국민의 바람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국민들은 인권위에 잘 정리된 보고서나 보기에 좋은 '한 건'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침해와 차별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권위가 앞으로의 계획을 공개하고 인권단체들의 조언과 협력을 구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인권을 갈망하는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으며 인권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권위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