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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불평등한 과거청산


이념대결과 전쟁, 독재와 폭압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살아왔기에 우리에겐 유독 왜곡되고 은폐된 진실이 많다. 1948년 '여순반란' '제주 4․3폭동'에서부터, 79년 '부마사태', 80년 '광주사태'에 이르기까지, 가슴아픈 '폭동'의 기억들은 우리 현대사의 시공을 가로지른다. 그 중엔 부마'항쟁'이나 광주'항쟁'과 같이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받고 역사적 의의를 복원한 사건도 있지만, 여전히 '폭동'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사건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80년 봄의 '사북사태'다.

박정희의 사망과 함께 유신체제가 붕괴하면서, 새 질서를 향한 민중들의 열망이 분출하던 80년 4월. 강원도 사북의 탄광노동자들은 비인간적 처우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봉기의 깃발을 올렸다. 그러나 계엄 아래 언론의 취재마저 통제되면서 사북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고, 광부들의 항쟁은 '집단난동'으로 규정된 채 바깥 세상에 전해졌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르도록 사태의 진실은 묻혀져 왔다.

그런데 '사태' 직후 겪었던 가혹한 고문과 상처로 인해 감히 입을 열지 못했던 '사태'의 주역들이 최근 들어 비로소 증언을 시작했고, 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진실의 조각들을 맞춰낸 끝에 80년 사북을 '항쟁'으로 재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증언과 사료에 따르면, 사북 광부들의 투쟁은 노동자를 착취해온 회사와 어용노조뿐 아니라, 착취구조를 보장하고 비호했던 공권력에 정면으로 맞선 항쟁이었음이 드러난다. 이제 '사북사태' 또한 정당한 역사적 재평가를 받아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사북항쟁이 지금껏 외면받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데는 '빽'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광부들이 그 주체였다는 사실이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십수년간 아무런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삼청교육대 피해자와 같은 처지일 것이다. 동시대에 발생했던 부마사태나 광주사태 모두 민주화항쟁으로서 새로이 자리매김된 것에 비할 때, 유독 사북사태에만 '폭동'의 오명을 남겨두는 것은 분명 불공평한 일이다. 인권의 회복을 위해 폭압적 권력에 저항했다는 본질에 있어서 만큼은 사북과 광주, 사북과 부산이 전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북을 더 이상 변방에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광산노동자들의 투쟁이 갖는 정당한 의의를 복원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폭도'의 낙인을 지워내는 일, 그리고 사북항쟁을 우리 민주화와 인권운동사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은 더 이상 방치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