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독립성과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8월 25일 경찰청은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원회) 발족식을 개최했다. 이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지난 6월부터 경찰개혁은 국가폭력 진상규명에서 출발해야한다는 당사자와 시민사회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진압,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 반대투쟁, 밀양 송전탑건설 반대투쟁,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권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의도적으로, 조직적으로 수행된 국가폭력이다. 이 사건들에서 경찰의 행위는 정부에 대해, 기업에 대해 반대하는 행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국민의 인권과 안전보다 권력의 보위를 우선하는 경찰은 정치경찰이며, 이런 목적의 공권력은 더 이상 공권력이 아니라 국가폭력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조사는 권력과 경찰조직의 유착관계를 단절하는 경찰개혁의 전제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국가폭력의 실상이 밝혀지기를 기다려온 당사자들의 염원과 경찰개혁의 첫 단추로서의 진상조사위원회는 실로 그 책임이 무겁다. 그러나 경찰청 내부에 설치된 진상조사위원회이기 때문에 우려 또한 크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활동한 경찰청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인권침해는 끊이지 않고 반복된 선례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진상조사위원회는 비밀 보장과 독립성 보장에 의한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경찰청 차장을 비롯한 경찰위원 2인과 다수의 경찰조사관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경찰의 일이니 내부 사람이 있어야 파악이 된다는 이유를 댈 수도 있겠지만 조사대상 사건들은 이들이 모두 현직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고 앞으로도 현직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경찰 내부고발의 어려움, 이철성 경찰청장과 강신명, 김석기 등 전·현직 경찰수뇌부에 대한 불충분한 조사, 경찰내부 정보의 접근제한의 문제가 진상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의 권한과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한정된 기간동안 조사방향을 잡고 조직을 관리하면서 최종 보고서에 넣을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한 여러 이해관계의 압력에도 싸워야한다. 진상조사 과정에 부딪힐 수 있는 여러 문제에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상임위원이 부재한 것은 아쉽다. 피해당사자와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은 민간위원은 진상조사위원회의 목적을 향해 흔들림 없이 운영해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권위를 부여받았다.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조사 활동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층의 의도로 조사가 방해받거나 압력이 행해질 때 직접 조사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조사위원회의 목적인 밝히고자 하는 진실이 무엇인가이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대상을 ‘경찰의 경비·수사·정보수집 등 경찰권 행사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거나 의심이 되는 사건, 인권침해 진정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 등’으로 명시했다. 진상조사를 요구했던 5대 사건들은 개별적인 인권침해 사건이 아니라 국가폭력이다. 인권침해를 한 개별행위와 가해자를 찾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진실을 찾는 과정은 '왜'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피해당사자들과 우리가 알고자하는 것은 '왜 이 모든 일이 있어났는가'이다. 그저 표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넘어서, 누가 어떤 행위를 했는가를 넘어서, 이러한 행위들을 둘러싼 더 큰 배경과 맥락을 찾아내는 것이 진상조사위원회의 임무이다. 진상조사의 결과에는 개개의 사건에 관한 정보나 폭력행위의 나열보다 어떤 식으로 폭력이 작동되었으며, 폭력은 어떻게 정당화되었으며, 어느 집단이 어떻게 관여했으며, 폭력의 배후가 누구였는지가 담겨야한다.
진상조사는 국가폭력의 실체를 드러냄과 동시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다. 피해자들이 겪은 국가폭력을 말함으로써 사건의 맥락과 국가와 공권력이 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의도가 드러날 수 있다. 피해자들의 서사가 삭제된 자리에 테러리스트와 국가 질서 흔드는 무리의 낙인만 남은 이유가 밝혀져야 오랜 시간 갇혔던 고통에서 나올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되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을 수 있어야한다. 특히 경찰 위원과 경찰 조사관들은 호의적으로, 경청하려는 태도로 신뢰 구축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다시 경찰을 마주했을 때 불신과 외면당하는 폭력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진실을 찾는 일이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되었지만 이것은 개별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다. 따라서 진상조사위원회가 목표한 길을 가는 과정에 시민사회의 협력 또는 감시와 비판이 함께 할 것이다. 출발선에 선 진상조사위원회를 향한 우려와 걱정에 대해 진상조사위원회 역시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않길 바란다. 한편 시민사회는 이런 사건들과 함께 했던 참여자로서, 목격자로서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도 함께 할 것이며, 부당한 압력과 방해에 맞서 비판하고 싸울 것이다.
2017년 8월 28일
공권력감시대응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