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청구권 확인 위해 외교문서 공개 필요
일본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 청구를 제기하고 있는 일제 강점 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정부에 65년 '한일협정'의 외교문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흔히 한일협정에 의해 한일 양국간 전후 피해보상 문제가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개인적인 청구권은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청구권 문제에 대해 한일협정 당시 양국의 정확한 합의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규명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1일 오전 11시 민변 사무실에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추진위원회」(공동대표 강만길 등, 아래 특별법추진위)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군인동원 피해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일협정" 문서 공개 촉구를 위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100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0월 당시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일 양국 정부는 피징병․징용자의 배상 등 양국간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일단락 지은 바 있다"면서도, "다만, 정부로서는 한일협정이 개인의 청구권 소송 등 재판을 제기할 권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국가 차원의 청구권 행사는 한일협정에 의해 불가능해졌지만 개인적인 청구는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 사무국장은 "일본 재판부는 개인청구가 소멸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한일협정으로) 한국정부가 외교보호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외교보호권이란 외국에 나가 있는 자국민에게 피해가 생겼을 경우 본국이 외교사절을 통하여 상대국에게 적당한 구제방법을 취하도록 요구하는 권리다.
이런 논리로 지금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진행한 70여건의 재판과정에서 한일협정은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김 사무국장은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과연 한국정부의 잘못인지 일본정부의 잘못인지 확실하게 규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일협정 외교문서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보공개법과 외교문서보존 및 공개에 관한 규칙'에서는 30년이 지난 외교문서에 대해 공개를 그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그러나 한일협정이 체결된 지 37년이 지났는데도 한일협정과 관련된 일체의 기록은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다"고 고발했다. 이어 "이는 국민의 알 권리인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이들은 또 "이제라도 무수한 의혹이 제기되었던 문서를 공개해 한일 관계의 올바른 해결점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하며, "한국정부가 문서 공개를 계속 회피할 경우 한국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전개할 것"임을 선포했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한일 양국이 일방적으로 체결한 한일협정의 외교문서를 한국정부가 공개할지는 미지수다. 한일협정 외교문서의 경우, 지난 98년 외교통상부에서 "양국 외교관계 등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비공개에 해당한다"고 최종 심의한 바 있다.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는 5년마다 공개여부를 판단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