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비준 및 국내법 정비, 시급한 과제로
7월 1일 '국제형사재판소(ICC) 설치규정'이 공식 발효되자, 세계는 앞다퉈 '역사적 순간'을 환영했다. "최근 50년 사이에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인권기구"로 찬사를 받는 이 국제기구의 역할은 무엇일까? 2일 국제인권법학회와 참여연대사법감시센터 주최로 열린 '국제형사재판소 규정 발효 기념 학술회의'의 발표내용을 토대로 ICC의 역할과 국내 수용의 문제를 살펴본다.
● 국제형사재판소(ICC)란?
ICC는 '집단살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개인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설 국제기구다. 90년대 유고전범재판과 르완다전범재판 등 유사한 형사재판이 있었으나, 이들이 특정한 사건에 대한 한시적이고 사후적인 처리기구였던 데 반해, ICC는 미래의 중대인권범죄들을 처리하기 위한 상설기구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98년 로마에서 열린 회의에서 찬성 120개국, 반대 7개국의 표결에 따라 ICC규정(로마규정)이 채택됐고, 올해 4월까지 66개국이 비준서를 제출함에 따라 7월 1일부터 공식 발효케 됐다. 올 9월 1차 당사국회의를 갖는 ICC는 내년 1월 재판관을 선임하고 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창립회의를 갖는다.
● 무엇을 다루나? - 대상범죄
ICC규정 제5-8조에 따르면, ICC는 '집단살해죄'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를 다루게 된다.
여기서 '반인도적 범죄'란,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으로 규정되며, △살해 △절멸(식량과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박탈하는 등 고의적으로 생활조건에 고통을 가하는 것) △노예화 △고문 △성범죄 등을 포함한다.
다만, ICC는 규정발효 이전에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관할권을 갖지 못한다. 즉 2002년 7월 1일 이전의 범죄에 대해선 처리권한이 없다. ICC규정에 새로 가입하는 국가의 경우, ICC관할권은 그 국가의 가입이후에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이처럼 소급적용을 금지한 것은 좀 더 많은 국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현실적 이유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태현 교수(한양대)는 "소급적용금지가 ICC규정 발효일 이전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서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발효일 이전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선 국내법원이나 다른 국제재판소에서 처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 관할권 문제
ICC는 당사국에서 해당 범죄를 처벌할 의사가 없거나 혹은 처벌할 수 없는 경우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사건을 회부한 경우와 비당사국이면서 관할권을 수락한 경우엔 당사국이 아니더라도 관할권을 적용할 수 있다.
규정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관할권 행사를 위해 별도의 국가동의가 필요한가'라는 문제가 주요 논란거리가 된 바 있다. 미국은 ICC 관할권 행사의 조건으로서 관련국의 동의를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논란 끝에 "ICC규정의 당사국이 되면 자동적으로 ICC의 관할권을 수락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 ICC 국내수용을 위한 과제
ICC규정을 국내에서 수용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조항이나 공소시효 문제와 같이 ICC규정과 상충될 수 있는 국내법 규정들을 정비하는 작업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포함한 관련법의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조국 교수(서울대)는 "ICC규정은 가장 높은 수준의 형사피의자 인권보호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며 "국내법이 ICC규정 수준으로 피의자권리를 규정하지 못한다면, ICC의 관할을 받는 가장 극악한 범죄인보다 국내법원의 관할을 받는 경범자의 처우가 더 열악해지는 모순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정부의 태도
한국정부는 2000년 3월 ICC규정에 서명했으나, 2년여 동안 국회비준서 제출을 미뤄왔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조약과의 남관표 심의관은 "올해 안 국회 비준 및 관련법 통과가 목표"라고 밝혔다. 남 심의관은 "새로운 제도를 우리 법체계에 접목시키는 것인 만큼, 국내법 정비가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법무부 검찰4과의 백기봉 검사도 "헌법과 상충되는 문제 등 다양한 쟁점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기 위한 검토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회장 최병모)은 1일 성명을 내 "정부는 하루 빨리 ICC로마규정의 국내비준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 "로마규정 상의 범죄를 국내에서도 처벌할 수 있고, 공소시효불인정 등의 원칙을 수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정비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