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도시에 사는 김 씨는 아이들이 넷이다. 보증금이 3천5백만원인 전세집을 얻어 살고 있으며 전세보증금 상승에 대비해 은행에는 4백90만원의 돈이 저금돼 있다. 남편은 질병으로 일을 할 수 없고, 김 씨가 일을 해 월 백만원을 번다. 이 가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아래 생계 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소득인정액제에 따르면, 최저생계비가 큰 폭으로 오르지 않는 한 김 씨 가구는 수급권자에서 탈락된다. 올해 6인 가족의 최저생계비는 127만원. 이 가구의 재산이 32만여원의 소득으로 환산돼 실질소득 백만원과 합산할 때, 최저생계비 기준을 웃돌기 때문이다.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데, 은행에 있는 돈과 전세보증금을 털어 살자니 빈곤의 악순환이다.
소득인정액제는 수급권자 선정 기준을 소득과 재산의 이원적 기준을 하나로 통일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 아래 2003년부터 도입된다.
그러나 지난 8월 28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보위)의 의결을 거쳐 발표된 재산의 소득환산율이 지나치게 높아, 여전히 최저생계 수준 아래서 살아가는 다수 사람들을 제도 밖으로 방치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이야기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연대회의’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악 저지를 위한 공대위’가 22일 낮 2시 서울 종로성당에서 연 토론회에서 나왔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중보위가 재산의 소득환산율은 지나치게 높고, 기본재산은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기초생활보장이 필요한 많은 빈민들이 수급권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경우, 소액의 저축이나 전세돈을 털어 써야 하는 처지로 몰리기 때문에 결국 빈곤 탈출은 영영 불가능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류 소장은 “가족 수에 상관없이 기본재산 면제액이 똑같아서 가족수가 많은 가구일수록 수급권자가 되기 어렵거나 혹은 되더라도 급여가 더 낮게 책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승용차에 대해 연간 1,200%의 높은 환산율을 적용한 것도, 생계를 위해 자동차가 반드시 필요한 가구까지 탈락시키기 때문에 문제”라며 “승용차를 가진 사람의 소득이 의심스러우면 정밀 재산 조사를 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류 소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와 달리, 빈곤층의 최저생계를 완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현재의 예산을 기준으로 수급자 규모를 설정하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기초생활보장이 필요한 사람의 수와 그들의 생활수준 및 최저생계수준을 토대로 수급권자를 선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정하는 최저생계비 이하 빈민의 수는 3백70만 명이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직전인 2000년 9월에 154만명이던 수급자의 수는 2001년 말 149만명, 2002년 9월까지 136만명으로 계속 줄었다.
민간대표 중 한명으로 소득인정액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순천향대 허선 교수는 소득환산율이 너무 높다는 데 동의하며 “논의 과정에서 민간위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승용차 소득환산율 적용조항을 없애고 정밀 재산조사로 대체하는 것이나 △기본재산 면제기준을 가구원수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허교수는 “소득기준이 아닌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도 많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론이 끝난 후 이날 참석자들은 소득인정제도를 포함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방안에 대해 의견서를 작성, 보건복지부 및 중보위 등 관계기관에 의견서를 전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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