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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당신의 ‘근로능력 유무’는 어떻게 점수로 판단되는가?

기초생활수급자 근로능력 판정기준의 반인권성

어떤 종류의 절망을 택할 것인가

거동을 하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혐오감을 줄만큼 외모가 불결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복지 급여일까…….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짓밟힌 자에게만 주어지는 권리가 복지 수급인가.

올해 1월 1일부터 보건복지가족부가 시행하고 있는 ‘근로능력 판정기준’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가난한 국민들을 정부가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더럽고, 무능하고,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제도의 틀에 가둬놓겠다는 것이다. 당장 올해 1월부터 기초생활수급자들은 평가시험대에 올라 생면부지의 평가공무원이 묻는 치욕스러운 문항들에 답하고 온 몸과 정신을 시험하는 차가운 눈빛을 견뎌내야만 한다. 수급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근로무능력자’가 되어 40만원(1인 가구 현금급여기준) 남짓한 수급비를 받으며 관리와 시혜의 대상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사회에서 더불어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의료급여 수급권 제한(1종에서 2종으로 전환)과 맞바꿔치기하고 희망 없는 일자리(‘자활’의 전망이 부재한 자활사업 참여)에 가둘 것인가. 물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조차 주어지지는 않지만 둘 중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상처와 절망은 면할 길이 없다.

근본 배경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계

2009년 12월 29일 보건복지가족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7조 2항의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 대한 기준을 변경하여 고시했고 그에 함께 근로능력 판단 기준을 새롭게 만든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근로능력 판정제도」를 발표하여 2010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어떠한 사람도 판단하기 어려운, 노동능력 유무를 판별하겠다는 정부의 평가 잣대 만들기 시도는 끈질기게 지속되어 왔다.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근본 한계에서 비롯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연령, 성별, 노동 유무, 장애 유무에 무관하게) ‘소득이 일정액(최저생계비) 이하’에 처한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시행 10년을 거치며 그 제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우선, 생필품 항목을 무차별 생략한 자의적 계측조사와 정부 예산 논리에 짜맞춘 최저생계비 기준이 10년째 점점 바닥으로 내려오고 있다. 2010년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50만원, 4인 가구 136만원에 불과하여 평균소득의 30%를 약간 웃돈다. 재산 한 푼 없어야 통과한다는 최저생계비 기준에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춘 후에도, 가족이 있다고(수 십 년째 연락이 두절되었더라도) 간주부양비를 책정한다. 그것도 최저생계비 120%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라도 말이다. 다행히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모두 너무 가난해서 이 기준을 통과한 그야말로 최고로 가난한 수급자들에게 다음으로 닥치는 것은 근로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하는 일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조항이 기초생활보장법 하의 조건부수급조항이다. ‘근로능력이 있는 자는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수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의료급여법 적용 기준으로 직결되어 버린다.

2010년 1월 13일 반인권적 근로능력판정기준 철회를 촉구하는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모습

▲ 2010년 1월 13일 반인권적 근로능력판정기준 철회를 촉구하는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모습


누군가의 근로능력은 그 어떤 고매한 법으로도 규정할 수 없기에, 기초법도 감히 ‘근로능력자/무능력자’를 명시한 바는 없다. 단지 지난 10년간 돈 많은 지방자치단체, 착한 공무원 만나면 다행이 되어버리는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그런데 2009년부터 ‘부정수급자’가 심각하게 늘었다느니 하며 수급기준을 엄격히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복지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비수급 빈곤층 410만 명이 수급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가, 5천여 부정수급 가구를 걸러내는 것이 시급한가! 우선은, 일할 수 있는데도(일할 사회적 환경은 안 되더라도) 일하지 않고 수급비를 받는 사람을 걸러내겠단다. 전체 수급자 160만 명 중 17만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2009년 용산구청에서 자행된 수급권자 무더기 강제전환사태는 의사 진단서만으로 근로능력을 판단토록 한 보건복지가족부 지침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일자,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겠다고 의사협회 등과 머리 맞대고 만든 것이 올해부터 시행되는 근로능력 판정기준이다.

수급자 인권 짓밟는 근로능력 판정기준의 문제점

복지부의 근로능력 판정기준은 질병, 부상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의학적 평가기준>과 외양과 태도(자세)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활동능력 평가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준으로 ‘근로능력자’를 색출해 자활사업에 참여시키겠다는 것이다. 의도 또한 문제지만 그 발상과 기준, 방식들이 한 마디로 ‘반인권’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우선, 개인의 ‘근로능력’을 타인이 판단하도록 한다는 점 자체가 문제다. 겉으로는 수급자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돕고 싶다면 당사자에게 ‘자활사업’의 전망을 제시하고 동참하도록 설득해야 이치에 맞다. 자활사업에 참여해도 일반 수급보다 전혀 살림살이가 나아질 전망이 없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노동능력을 계발할 수 없으며 심지어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자활사업을 수급을 명분으로 강요하는 의미밖에 없다. 한 사람의 노동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본인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적으로 노동능력이 취약하다고 인정되는 사람도 본인이 원한다면 노동을 ‘징벌’이 아니라 삶의 희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판정기준의 문제점이다. 겉으로 아무리 합리적인 것 같아 보이더라도 질병에 대한 의학적 판단기준과 외양과 태도를 관찰한 자의적 판단기준은 ‘근로능력’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복지부는 제도를 내놓으며 ‘근로능력 없는 자’의 기준을 ① 18세 미만/65세 이상, ②중증장애인(1~2급 장애인, 3급 중복 장애인), ③질병․부상 또는 그 후유증으로 3월 이상의 치료 또는 요양이 필요한 자, ④임산부, ⑤공익요원 등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에도 위배되는 몰상식한 규정이다. 개인이 처한 조건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일정한 지원을 받으며 노동할 수 있어야 하는 이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대목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③ 집단에 대해 판정기준을 들이대 재평가하겠다고 한다.

셋째, 특히 ‘활동평가’ 기준의 반인권성이다. 활동평가 기준으로 제시한 내용을 살펴보면, ‘외모가 혐오스럽고 옷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지 여부, 집중력 없고 산만한지 여부, 자포자기하거나 작심삼일이 되는 상황여부, 자기 분에 이기지 못하거나 쉽게 좌절하는지 여부, 학력이나 연령 정도’가 평가기준으로 총 10항목 , 40점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총 3점 이하의 점수를 받아야만 근로능력이 없음을 판정받게 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럽고 혐오스런 이미지로 표현해 빈곤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최저생계비 조차 마련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사람들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있다. 더구나 평가 항목별 기준들은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들을 고스란히 담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결국 빈곤층이 빈곤하게 된 이유, 혹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가 마치 개인이 지저분하고 산만하며, 책임감 없고 자포자기하는 태도 때문에 생긴 것으로 낙인 찍어 빈곤층 개인의 문제인양 환원하고 있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층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보건복지가족부가, 빈곤층을 낙인찍는 항목을 만들어 기초생활수급자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

2010년 1월 13일 반인권적 근로능력판정기준 철회를 촉구하는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모습

▲ 2010년 1월 13일 반인권적 근로능력판정기준 철회를 촉구하는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모습


수급권자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자

지난 1월 13일 위와 같은 반인권적 근로능력판정기준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만들어진 이후 기초생활수급당사자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갈수록 숨통을 조여 오는 제도의 틀에 속한 기초생활수급자도, 듬성듬성한 그물 같은 제도의 구멍에 빠져나와있는 기초생활수급권자도 이제는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수급권자 권리를 말살하는 용산구청과 복지부에 항의하며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이 구성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오히려 옥죄어 왔던 기초생활보장제도 이제 10년이면 참을 만큼 참았다. 복지수급은 빈곤한 국민들에게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임을 수급 당사자의 목소리로,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시민의 이름으로 함께 외쳐야 할 것이다.

덧말. 분노게이지 상승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2009년 12월 31일,「근로능력평가의 기준 등에 관한 규정」(보건복지가족부고시 제2009-243호)를 찾아보시길.


덧붙임

최예륜 님은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으로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에서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