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것 속에 진실은 드러나고 악마는 디테일에 숨겨져 있다. 흔한 이 말은 정부 정책에는 잘 들어맞는다. “4인 가구 소득 211만원까지 기초생활수급자 된다”라는 제목으로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한 4월 25일 이후 언론보도만을 보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복지의 수준과 질도 달라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답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후퇴했다.
달라진 기초법, 쪼개진 급여가 헷갈리게 한다
그럼 “4인 가구 소득 211만원까지 기초생활수급자 된다”는 무슨 말이냐고? 이 한 문장의 진실 여부를 독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먼저 기초생활수급자를 정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작년 12월에 개정되면서 수급자 선정방식과 기준이 달라졌기에 ‘기초생활수급자’의 의미는 작년과 다르다. 작년 2월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생계가 어려워 동반자살을 한 후에 우리 사회에 최저생계보장이 화두로 떠올랐다. ‘송파 세 모녀법’이라는 이름으로 요란하게 개정된 기초법은 올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인지 기초법은 과거보다 후퇴했다.
기초법은 크게 세 가지가 바뀌었다. 하나는 기초생활수급자에 필요한 급여(생계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의료급여 등)를 한꺼번에, 이른바 통합해서 지급하던 것을 급여별로 쪼개서 나눠준다. 그리고 최저생계비를 측정하던 방식을 전물량방식(Market Basket, 바구니에 필요물품을 담는다는 뜻)에서 중위소득으로 바꾸었다. 마지막으로 중위소득을 측정하는 것도, 급여를 지급하는 것도 각 행정기관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4인 가구 소득 211만원까지 기초생활수급자 된다”는 복지부의 홍보문구에서 기초생활수급자는 교육급여를 지급받는 사람으로 한정된다. 개정된 법에 따라 각 급여별로 대상자가 달라 교육급여를 받더라도 생계급여나 주거급여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가구들은 많아진다. 기초법에 보장된 급여는 총 7가지인데 이중 현금으로 급여를 주는 것은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뿐이다. 교육급여는 중위소득의 50%로 다른 급여에 비해 보장범위가 넓다보니 복지부가 그것을 홍보문구로 내세운 거다. 그런데 교육급여는 현물인 수업료, 교과서대 등으로 지급된다. 교재비 등은 연 20만원도 되지 않는데 엄청난 것처럼 보인다. 다른 급여보다 보장범위가 가장 넓다고 해석될 수 있으나 이미 「초·중등교육법」을 통해 차상위 계층까지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어 보장범위가 기존보다 넓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면 다른 급여는 어떤가? 현금으로 급여를 지급받는 생계급여를 들여다보자. 정부 발표에 따르면 생계급여는 중위소득의 28%(4인 가구 기준 118만원, 1인 가구 기준 44만 원)에 미달하는 경우 대상자가 된다. 법 개정 전의 현급급여 기준이었던 135만원(수급선정 기준 163만원, 1인 가구 수급선정기준 62만 원,1인 가구 현금급여 기준 50만원)보다 낮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한 달 소득이 50만원이어도 기초수급대상자가 되었는데 이제는 수급자에서 탈락된다. 후퇴된 것인데도 복지부의 홍보카피에 놀아나 마치 보장수준과 대상이 높아진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
게다가 이번 4월 25일 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발표한 중위소득에는 그동안 포함되지 않았던 농어업가구의 소득이 포함됐다. 그동안 농어업가구는 소득 변동이 심해 빈곤현황 파악에 어려움을 줘 제외했었는데 이번에는 포함시키는 꼼수를 발휘해 중위소득이 낮아졌다.
바뀐 기초법으로도 송파 세 모녀가 살 수 없다
개정안으로 생계급여만 줄어든 게 아니다. 가계소비(의료비, 식비, 의복비, 주거비)에서 가장 큰 부담을 주는 게 주거비이다. 따라서 최저생활을 보장한다고 했을 때 주거비는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주거급여도 기준선(40%→43%)이 크게 오른 것처럼 홍보하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급여수준은 하락한다. 전 국토를 4급지(서울/경기인천/광역시/그 외 지역)로 나눠 급여를 차등화하고 있는 주거급여는 서울 1~3인 가구, 경기·인천·광역시 1인 가구를 제외한 모든 가구의 주거급여 상한액이 삭감된다. 또한 실제임대료가 기준임대료보다 적은 가구의 경우 실제임대료만 수급할 수 있게 돼,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수급자들의 급여는 줄어들게 된다.
달라진 주거급여 지급기준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3인 가구의 주거급여액은 23만6860원으로 송파 세 모녀가 내야 했던 월세(50만원)의 반도 되지 않는다. 주거빈곤층은 경제적으로 한 달 수입의 25~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거나 물리적으로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곳에 사는 사람을 뜻하는데 이러한 주거빈곤층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소득 하위 10% 이하 가구의 경우 소득대비 주거비 부담률이 50%를 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과거보다 1만원 정도 오른 주거급여 기준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전세를 구하기도 어렵고 월세만 해도 쪽방촌 월세가 20만원 정도인 현실과 거리가 멀다. 공공임대주택도 얼마 되지 않아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은 로또 당첨을 꿈꾸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중위소득 기준으로 수급대상자가 늘었다?
정부가 홍보하듯이 ‘중위소득으로 최저생계비를 전환’하는 것은 시민사회가 요구한 ‘상대적 빈곤선의 도입’인가? 아니다. 오히려 개정안은 상대적 빈곤선 도입보다는 최저생계비 기준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기초생활수급제도는 1999년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기반으로 한다. IMF 금융위기 이후 빈곤이 심해지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권리 확보라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제도였다. 과거 생활보호법과는 다르게 복지를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접근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 용어도 보호대상자, 피보호자, 보호기관에서 수급자, 수급권자, 보장기관으로 바뀌었다. 그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이든, 병이 들어서이든, 장애인이든, 실업자이든 간에 어떠한 이유로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활’ 즉, 먹고 자고 치료받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생활의 최저선을 보장해준다는 취지에서 ‘국민의 최저 생계보장’을 핵심으로 한다. 누구나 헌법 34조에 보장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법으로 제도화된 것이다. 그래서 기초법 7조(급여의 종류)의 2항에서 “급여의 수준은 제1항 제1호부터 제4호까지 및 제7호의 급여와 수급자의 소득인정액을 포함하여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필요한 비용, 즉 최저생계비를 측정하는 방식이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절대적 빈곤선을 적용하는 방식이라 많은 빈곤층이 기초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이에 대한 측정방식을 바꿀 것을 시민사회는 요구해왔다. 기초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최저생계비는 보건사회연구원이 매 3~5년마다 빈곤선을 전물량방식(Market Baske)으로 측정하여 확정했다. 전물량방식은 일정수준의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생활물품과 그 가격을 곱하여 필요생계비를 구성하는 절대적 빈곤선의 측정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핸드폰 비용을 넣지 않을 정도로 필수품의 품목이나 가격이 조사자의 주관적 판단으로 조정되는 자의성이 많아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었다. 게다가 2004년도 계측 당시 서울시 145만 원(광역시 127만 원, 중소도시 123만 원)안을 측정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이 제시했으나 정부는 예산에 맞춰 지역구분없이 110만원으로 결정하기도 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시민사회가 비판해왔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평균소득 같은 상대적 빈곤선을 도입하여 최저생계비를 측정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기초법에 ‘중위소득’ 개념이 도입돼 과거와는 다른 상대적 빈곤선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개정된 기초법 2조에는 “‘기준 중위소득’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이 급여의 기준 등에 활용하기 위하여 제20조제2항에 따른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고시하는 국민 가구소득의 중위값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과거 시민사회가 제안한 상대적 빈곤선은 평균소득의 50%, 중위소득의 60%였다. 중위소득이란 전체가구를 소득 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가구의 소득이고, 평균소득은 전체 가구원이 1년간 번 총소득을 평균으로 나눈 것이다. 빈부차가 심할 경우 중위소득이 평균소득보다 한참 낮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중위소득은 부동산이나 금융소득을 제외한 소득만을 다룬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기구(OECD)에서 사용하는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50∼150% 구간에 포함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중위소득의 150% 초과가구는 상류층이라고 정의한다.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버는 가구는 빈곤층이다. 2013년 1인 가구의 월간 중위소득은 177만 원으로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의 월 소득은 88만5000원이 된다. 2013년 최저생계비 60만3000원과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중위소득 개념을 사용해도 과거의 최저생계비와 차이가 없다. 참고로 2013년 평균소득은 1인 기준 월 444만7000원이다.
최저생활선을 없앤 개별급여 방식
개정된 법은 최저생계비로 보장하려는 기본생활보장 개념을 아예 없앴다. 수급권 범위를 넓히거나 급여수준을 높이는 것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 아니 오히려 ‘맞춤형 복지’라는 이름으로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최저생계비 개념을 폐기하고 각 부처 장관이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별로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을 별도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최저생계비’는 각 행정기관장(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의지와 예산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각 급여의 ‘급여수준’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과거에 있던 최저생계비라는 기준선으로 기본급여를 통합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없애면서 종합적인 빈곤정책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가 기존에 주장한 개별급여의 실효성 확대는 기존 제도에서 지급하던 최소한의 생계급여를 유지한 상태에서 각 급여별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급여 보장수준을 높이라는 것이었지 최저생계비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통합 지원되던 급여를 없애고 급여별로 떼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꿔 오히려 대상자도 줄어들고 지급수준도 낮아졌다. 정부 통계로도 500만 절대빈곤인구 중 400만(수급자는 140만 명) 가량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기초법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보장법이 아니라 빈곤층의 권리를 개별급여로 쪼개어 보장수준을 낮추는 ‘권리해체법’이 된 것이다. 이제 더 빈곤한 상태로 떨어질 사람들이 많아졌다.
불합리한 소득인정액이나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하지 않아
그러면 문제가 되었던 기초법의 악성 조항들은 빠졌나?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길은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큼 어렵고 통과해야할 장애물(기준)이 많다. 기초법의 사각지대를 가장 많이 만들었던 부양의무자 기준은 조금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폐지하지 않아 그로 인한 사각지대는 전혀 줄지 않았다. 한 번도 연락조차 하지 않는 가족들이 서류상으로 존재한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가구가 허다하다. 2009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한국정부에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서 문제를 삼을 정도였다. 또 수급자들을 선별하는 추정소득, 근로능력 등과 같은 것들은 많은 빈곤층이 수급신청을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지만 그대로다. 수급자에게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실제 근로소득이 없더라도 ‘추정소득’을 책정해 수급비에서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박탈한다.
송파 세 모녀도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 어머니만이 식당일로 한 달에 120~150만원을 벌고 있었지만 죽기 한 달 전 넘어져 오른팔을 다쳐 일을 그만 둬 소득이 끊겼다. 어디 손 내밀 친인척도 없는데 국가가 보장해줄 수 있을까? 만약 송파 세 모녀가 동주민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어도 거부당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30대인 두 딸은 법상으로 근로능력자이기 때문에 수급을 받을 수 없다. 수급신청자나 근로능력자 가구원이 있는 신청자에 대해 구두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딸이 고혈압과 당뇨를 앓아온 것으로 보이나 고혈압과 당뇨는 근로무능력자로 판정받을 수 없는 병인데다 병원에서 치료한 최근 기록이 없어 ‘근로무능력자’임을 증명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 설령 어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더라도 개정법으로도 소득인정액이 118만 원 미만이니 두 딸의 추정소득(1인당 60만 원 정도)을 적용하면 현금 급여는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이러한 개정안에 붙은 ‘송파 세 모녀법’이라는 별칭이 부끄럽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보장법이 되려면
기초법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빈곤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난은 개인이 불성실하거나 불운해서 생기는 문제라는 틀을 깨야 한다. 수급자들의 취약한 정보 상태, 낙인감과 모욕감에 기반한 기존의 기초법 틀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국가와 사회가 ‘생활의 기본선’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보편적인 권리임을 인정해야 한다.
빈곤은 사회적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한국의 빈곤탈출률은 2006년 35.43%, 2007년 33.24%, 2008년 31.28%로 계속 낮아지는데 반해 빈곤진입률은 OECD 평균4.5%보다 높다. 그에 반해 사회복지지출은 2012년 GDP 대비 9.8%로 OECD 평균인 44.3%보다 한참 낮다. 그런데도 얼마 전 사퇴한 이완구 국무총리는 복지재정 3조원을 절감하겠다고 했다. 복지를 시민의 권리가 아닌 정부의 시혜로 생각하며 수급자들을 감시하고 ‘가난을 증명’하라는 기조를 정부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빈곤은 단순히 소득이 낮은 것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이자 기본권의 약탈이다. 그래서 유엔인권기구에서도 빈곤은 총체적 인권침해라고 하지 않았는가. 총체적 인권침해를 강화하는 정부가 말로만 떠드는 복지확장 언론플레이, 그 눈속임에 더 이상 놀아나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