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청구

중정의 고문·조작, 허위공판조서 등 의문사위 조사 근거

74년 북의 지령을 받아 '민청학련'을 배후조종해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23명이 구속되고 이중 8명이 사형된 '인민혁명당 재건위(아래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이 서울지방법원에 청구됐다. 앞으로 이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여부가 기대된다.

지난 9월 16일 조사활동을 종료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는 인혁당 관련자 고 장석구 씨에 대해 조사하면서, 인혁당 사건이 중앙정보부가 고문을 통해 만들어낸 조작극이라는 사실을 수사 관련자 및 교도관들의 진술과 당시 군사법원 공판기록을 통해 밝혀냈다. 이는 유가족과 관련 사회단체 차원에서만 제기되던 각종 의혹들이 국가기관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이에 10일 천주교인권위원회 인혁당대책위(아래 대책위)는 △고문 등 수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 △공판 조서의 위조 △증거 없이 중앙정보부의 지시에 의해 사건이 짜 맞추어진 점 등 의문사위의 조사결과 밝혀진 내용을 근거로 우선 도예종 씨 등 8명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형사소송법은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명백하고 새로운 증거를 재심청구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형태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의문사위의 조사과정에서 당시 피고인들이 물고문·전기고문 등을 당했다는 사실이 관련 수사관이나 교도관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며 "이는 재심의 이유를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수사에 관여한 자가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때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모두 혐의사실을 부인했는데 의문사위가 확보한 당시 군사법원의 공판조서에는 피고인들이 모두 자백한 것으로 위조돼 있었다"고 이 역시 재심의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420조 제1호는 원 판결에서의 증거 서류 또는 증거물이 위조 또는 변조된 것이 증명된 때를 재심 사유의 하나로 규정한다.

이밖에도 변호인단은 "수사관들이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미리 정해준 내용대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았고 검사가 조사할 때도 중정의 수사관이 참여했다고 증언했다"는 점을 덧붙였다. 변호인단은 "재심청구의 사유로 제시된 증거들이 별도의 확정판결에 의해 인정된 것은 아니나, 국가기관인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 밝혀진 것들인 만큼 법원은 마땅히 재심청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사소송법은 재심의 사유가 별도의 확정판결(제420조)에 의해 증명된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단, 확정판결이 불가능한 경우엔 그에 대신하는 증명(제422조)을 요구하고 있다.

80년 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 신귀영 씨의 재심청구는 수사과정에서의 고문과 위증 사실이 별도의 확정판결에 의해 입증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원에 의해 기각된 바 있다. 과거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사건의 경우, 이미 시효가 지나 별도의 확정판결을 통해 재심사유를 입증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편, 이날 재심청구에 앞서 인혁당 사건의 유가족 중 한 명인 이영교 씨는 "인혁당 사건은 유신시절 사법부를 수치스럽게 했던 사건이기도 하다"며 "법원이 재심을 개시해 진상을 밝히고 정의로운 재판을 해 더이상 이런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