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분명한 입장 밝혀야
인권옹호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노조설립 움직임이 일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5급 이하 인권위 직원들은 지난 28일 투표를 통해 직장협의회가 아닌 노동조합을 직원조직의 형태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들은 올해 초 직원조직 설립준비위를 결성, 각 과별로 대표를 뽑아 직원조직의 형태에 대해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인권위 노조가 인권위로부터 인정받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은 6급 이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직장협의회 설립만을 허용하고 있다. 여기서 '노조'라는 명칭의 문제는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듯하다. 지난해 3월 이미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차봉천, 아래 공무원노조)가 출범해 1년 넘게 활동을 전개해 왔고, 최근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공무원노조의 실체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으며, 노동부도 노조 명칭을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공무원노조의 가입대상을 6급 이하로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5급부터는 관리직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대해 공무원노조 박재범 정책기획국장은 "중앙부처의 5급은 평직원과 똑같고, 실제로 5급 이상에도 관리직 업무와 내용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도 많다"라고 반박했다. 또 "공무원노조 가입대상을 6급 이하로 일률적으로 제한하게 되면 노조 가입률이나 활동범위가 축소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인권위 5급 직원들도 조사관으로서 간부라기보다는 사실상 실무자에 가깝다.
이에 따라 인권위 직원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에 대해 인권위 스스로가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일단 박경서 인권위원은 "'모든 인간은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다'는 헌법정신에 의해 인권위에 노조가 태동하려는 것은 민주주의로 가는 하나의 발판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또 "건설적인 노조는 항상 (소속기관의) 창의력을 돕기 때문에 (노조 설립을 계기로) 인권위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물론 인권위원들 사이에 입장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인권위가 현행법과 정부방침을 이유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는 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시 해야 하며, 기존의 법률과 정책이 반인권적일 경우에는 인권의 잣대로 적극적인 개선 권고를 내려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위는 단지 인권위 노조를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현 정부에 '공무원 노조를 허용하라'고 적극적인 정책권고를 해야 할 것이다.
또 박 국장은 인권위 직원들의 활동이 중앙부처 공무원들 스스로가 노조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 노조의 경우는 기존 법률의 한계를 뛰어넘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반면, 중앙부처 노조의 활동은 상당히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인권위 직원들은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몇몇 인권위 직원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취재에 응하지 않거나 극도로 언급을 삼가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까지 노조 설립 추진 주체나 준비 정도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막을 확인할 수 없기에 실제 어떤 어려움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온 국민의 바람은 인권위 직원들이 기존 반인권적 법률과 정책에 불복하고 자신들의 노동권을 스스로 쟁취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일 게다. 노무현 대통령이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파병방침을 결정한 상황에서 전쟁반대·파병반대 성명을 먼저 발표함으로써 인권위의 반전입장을 이끌어냈던 인권위 직원들의 당당한 모습을 다시 한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