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처럼 부려먹던 용역업체, 하루아침에 일터 빼앗아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한가로운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대공원, 그 한편에는 하루아침에 일터를 빼앗긴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대공원 30여명의 환경미화 용역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해고에 항의하며 관리사무소 앞에 천막을 세우고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대공원 개원이래 십 수년간 이곳에서 일해온 5-60대 노동자들이 철야농성까지 감행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서울대공원 환경미화노조 민병환 지부장에 따르면, 지난 16일 퇴근 무렵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대공원 환경팀장으로부터 "(새 용역업체로) 대원관리(주)가 선정되었으니 취업의사가 있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찾아가 접수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해보니 이미 51명의 다른 외부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노조 조합원들인 이들 30여명의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21년 동안 대공원 환경미화 노동자로 근무해온 운종금 씨는 "오래 근무한 혜택도 하나 없이 21년을 참고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분노는 말로 다 못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대원관리, 노동자들 노예처럼 부려먹어
이번 사태는 조달청이 2003년 대공원 환경미화 용역업체로 대원관리를 선정하면서부터 비롯됐다. 지난 24일 대공원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대원관리가 용역업체로 선정된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대원관리는 지난 2002년 웅비환경(주)이 새 용역업체로 낙찰되기 전까지 15년 간을 대공원과 청소용역계약을 맺어왔던 회사다. 이 회사는 각종 비리와 퇴직금 미지급 등의 문제로 아직까지 노동자들과 심각한 갈등관계에 놓여있다.
대부분 10년에서 20년동안을 대공원에서 근무해온 이들 노동자들은 "대원관리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십 수년간 노예처럼 부려먹었다"고 표현했다. 명절도 없이 한 달에 2번밖에 못 쉬면서 분뇨처리 같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했지만, 임금은 연장근로수당과 상여금 등을 포함해 고작 60여만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임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똑같이 일하면서도 10여만원이 적은 임금을 받았고, 비수기에는 나오지 말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기도 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2001년 4월 노조를 결성하고 단체협상 결과 임금인상과 주1회 유급휴일을 따냈다. 그러나 대원관리는 그 해 12월 31일 대공원과의 용역계약이 만료되자, 52명 조합원들을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했다. 이후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다음날부터 대공원에서 25일간의 힘겨운 농성을 벌인 끝에 2002년 새 용역업체로 낙찰된 웅비환경으로부터 고용승계를 따낼 수 있었다.
대원관리의 횡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97년에는 고용하지 않은 사람을 고용한 것으로 문서를 위조, 임금을 빼돌려 온 것이 밝혀져 이 회사 이사가 수원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당시 빼돌린 임금은 92년부터 99년까지 총 55회, 1억5천1백여 만원에 달한다.
조달청, 문제 많은 회사 왜 선정했나
노동자들은 "과거 임금탈취나 부당해고 등으로 대원관리가 노동자들과 갈등을 빚어왔고 퇴직금 미지급 관련 소송이 진행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조달청이 왜 대원관리를 선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민병환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대원관리 선정에 대해 문제제기하자, 조달청은 '이 회사가 소송계류 중에 있고 회사대표자가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해도 이는 적격심사기준의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오직 최저 낙찰제만 적용해 대원관리를 선정했다"고 비난했다. 전국시설관리노조 박명석 사무처장도 "대원관리가 노무관리에서 문제투성 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달청이 이를 무시하고 입찰을 제한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노동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대공원측과 대원관리가 결탁해 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2002년 한 해만 용역업체를 잠시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2002년 용역업체로 낙찰된 웅비환경 회장이 노조 대표와의 면담에서 "노조를 해체하면 임금을 100% 인상해주겠다"는 제안과 동시에 "대공원 측에서 그런 요구가 있었다"는 말을 흘린 점이 의혹의 배경이 되고 있다. 당시 노조는 노동조건 개선을 전제로 노조활동 중단에 합의한 바 있다. 더구나 현재 대원관리는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노조를 탈퇴하면 17명에 한해 고용해줄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다 95년 대원관리의 관리직으로 재직했던 김 모씨가 지난 달 26일 노조에게 대공원 관리들과 대원관리의 비리 사실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함으로써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김 모씨에 따르면, 대원관리측은 생일이나 나들이, 명절 때마다 그에게 대공원 관리들에게 흰 봉투를 전달케 했다. 또 그는 "근무 안 하는 사람을 근무하고 있는 것처럼 하고, 그 사실을 대공원 측에서 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 수시로 봉투를 전달케 했다"고 진술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근거들을 들어 이번 용역업체 입찰에서 대공원측이 대원관리에게 입찰 기준가를 흘림으로써 대원관리가 선정되도록 도왔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명확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현재 30여명의 서울대공원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대공원 측이 직접 고용하거나 대원관리가 조건 없이 100% 고용승계하고 2002년에 인상된 임금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