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과 소신 갖춘 인물 다행…밀실인선 되풀이는 문제
1일 대통령 지명 국가인권위원으로 법무법인 새길법률특허사무소의 대표변호사직을 맡고 있는 이흥록 변호사가 임명됐다. 이에 따라 반인권․비리 전력자라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으로 류국현 전 위원이 지난 1월 사임한 이래 줄곧 공석 상태에 있었던 비상임 인권위원직 하나가 주인을 찾게 됐다.
신임 이흥록 인권위원은 69년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래 7-80년대 부산지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이자 재야 민주화운동가로 활약했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해 신군부에 의해 끌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이 위원은 81년 '부림사건', 83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대표적 시국사건뿐 아니라 영남지역의 크고 작은 사건들의 변론을 맡으면서 활발한 인권옹호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부림사건'의 변론활동을 계기로 당시 후배 변호사였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두터운 친분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85년 5월 발족한 '부산민주시민협의회'에서도 노 대통령과 나란히 상임위원직을 맡기도 했다.
이후 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 평화민주당 창당을 주도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이 위원은 98년 6월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의 전신)를 탈당하기까지 정치활동에 주력했고, 탈당 이후에는 변호사 업무에 전념해 왔다. 현재 이 위원이 대표변호사직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새길에는 이용철, 최은순, 이석범 변호사 등 민변, 천주교인권위원회,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기도 하다.
인선경위에 대해 이 인권위원은 "20여일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내정 사실을 알려왔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35년간 변호사 활동을 해오면서 인권을 제1의 가치로 여겨왔다"면서 "아직도 인권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인권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는 검찰과 법원의 개혁 못지 않게 주된 인권침해 주체인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판단, 위원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또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올해의 3대 인권현안으로 다루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사회보호법,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소견을 묻는 질문에 '개인의 소신'임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가보안법은 없어져야 할 법률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관된 소신이다. 형벌 이외에 보호감호를 허용하고 있는 사회보호법은 국가보안법보다 더 야만적인 법률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이런 법률들이 존재할 만큼 인권에 있어서는 후진적인 나라에서 인권위원직을 맡게 된 것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기본적으로는 모두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의 정도에 비례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차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노동착취요 인권탄압이라고 본다."
인권단체들과의 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이 위원은 "이제 막 임명장을 받은 상태라 구체적인 확답을 내놓기는 힘들다"면서도 "인권단체들의 좋은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소망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위원의 임명 소식을 접한 인권단체들은 '인권옹호활동의 경력도 있고 인권개선의 의지도 갖춘 인물이 임명됐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또 다시 인권위원 임명 과정에서 밀실인선이 되풀이된 점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분위기다.
국제민주연대 최재훈 활동가는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던 '참여정부' 하에서 인권단체들이 당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권위원의 임명 소식을 접하도록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 활동가는 "내정자가 인권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밝히고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선행되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