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2천여명 이르러…특별법 제정 시급
지난 4월 28일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서 대인지뢰 폭발로 김정희(64세) 씨가 사망한 데 이어, 5월 2일 연천군 백학면에서 박정인(68세) 씨가 또다시 대인지뢰에 의해 왼쪽다리를 잃었다. 이렇게 올 상반기만 해도 벌써 2건의 대인지뢰 사고가 발생했지만, 정부는 대인지뢰 문제와 관련한 속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대인지뢰 피해자는 2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 중 국가배상을 받은 사람은 고작 11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피해자들이 생계조차 이어나가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정부의 손해배상금은 고작 몇 백만원에 불과하다. 피해를 입은 고 이재연 씨의 부인 이점순 씨는 "30년 전 남편이 대인지뢰 사고를 당한 후 치료를 위해 있던 땅마저 팔고,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며 "보상은 말할 것도 없고 치료비조차 보조해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인지뢰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고 있고 또 배상액도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지뢰피해자들은 공소시효 등의 문제에 발목잡혀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배상을 신청할 때 시효가 있는지도 모른 채 기간을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또 정부는 대인지뢰 사고가 발생하면 '북한의 지뢰다', '지뢰가 아닌 폭발물에 의한 사고다', '경고판을 무시하고 지뢰지대에 들어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등으로 발뺌하며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기피하고 있다.
이에 대인지뢰 피해자들과 인권·평화단체들은 대인지뢰 제거와 피해보상을 위한 법률 제정이 시급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도 '대인지뢰의 제거와 피해보상에 관한 법' 제정'의 필요성이 다시금 확인됐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김숙임 대표는 "대인지뢰피해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가 대인지뢰문제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조재국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캄보디아나 에티오피아 등의 지뢰 제거와 피해자 보상을 위해 11억 원을 유엔신탁기금에 제공하면서, 정작 우리 지뢰 피해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김다섭 변호사는 "대인지뢰 제거 및 피해보상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공소시효가 지난 피해자들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현재 사고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두고 있는 문제도 국가에 두도록 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인지뢰 제거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김형오 의원(한나라당)은 "이제는 대인지뢰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며 "올 정기국회에서 대인지뢰 제거 및 피해보상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