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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치유와 회복은 피해자들의 권리다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1. 참사 이전으로 회복하도록 치유 받을 권리가 있다.

참사 이전으로 회복할 권리, 치유 받을 권리. 그러나 가능할까?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올 수도, 참사 당시의 참혹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정부와 사회는 참사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다양하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참사와 재난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한국사회에서, 피해자는 광범위하다. 모든 이들이 재난 위험군에 속해 있다. 힘이 없거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일수록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치유와 회복 절차는 피해자 중심이 아니며 일방적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회복과 치유를 위한 피해자 지원과 추모 과정은 구조 실패의 연장선에 있었다. 지원대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상과 보상(이하 배·보상) 절차는 피해자들을 이중 고통에 빠트렸다. 피해자 지원을 금액으로만 환산한 까닭이다. 언론은 시시각각으로 액수를 공개하며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데 일조했다. 모욕은 정부와 정치권에 의해 조장되었다.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로 인식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참사 이후 피해자들은 새로운 심리적 외상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피해자 간 차별도 심각하다. 기간제 교사는 순직조차 인정받지 못했으며 민간잠수사와 자원봉사자,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심지어 민간잠수사는 해경을 대신해 형사 법정에 기소되었다. 추모사업 역시 공청회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기억 사업은 추모리본을 다는 것조차 범죄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피해자 중심 치유와 회복 과정은 없었으며 오히려 정부에 의해 다른 피해가 양산되었다. 피해자들의 지원받을 정당한 권리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피해자들이 “진상규명 없이 배·보상 절차를 받지 않겠다”는 말을 하도록 한 우리 사회의 잔혹함은 참사를 진행형으로 만들고 있다. 치유와 회복의 권리는 정당한 권리임과 동시에, 마땅히 보장해야 할 권리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로부터 치유와 회복은 시작된다.

4.16 인권선언 추진단 제안 카드뉴스 중 (출처: 4.16연대) <br />
http://416act.net/index.php?mid=decl_achive&page=2&document_srl=2874

▲ 4.16 인권선언 추진단 제안 카드뉴스 중 (출처: 4.16연대)
http://416act.net/index.php?mid=decl_achive&page=2&document_srl=2874


2. 세월호 참사 피해 규모는 총체적이고 지속적이다.

세월호 참사는 많은 피해와 피해자를 남겼다. 피해는 총체적이고 지속적이다. 우리 사회는 재난참사 피해와 피해자에 대해 아직 제대도 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피해자들을 다시 정의하고,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요구하고 있다. 언제까지 당사자와 가족이 모든 고통을 안고 살게 할 수는 없다.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지와 응원의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 지원 제도와 시스템을 총 점검해야 하며, 이에 대한 대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특히 피해자들이 겪을 다양한 심리적 외상은 평생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과제다. 트라우마는 속성상 완화될 수 있을지언정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지속되기 마련이다. 이에 국가와 사회는 생애주기 전반에 맞는 지원책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재난참사 뒤에 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국가와 사회가 교훈을 찾아 같은 유형의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추모사업에도 소홀했다. 세월호 참사를 국가와 사회가 기억하는 일은 재난참사의 재발을 방지하여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추모하는 일은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을, 상생과 협력보다 경쟁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풍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기억과 추모, 치유, 안전을 위한 추모사업이 되도록 유무형의 사업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사회적 여론을 불러일으키며 이를 통해 추모사업의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피해자 참여 없이 제정된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지원과 추모사업이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우려되는 점은 지원과 추모 관련된 일을 국무총리 산하 지원·추모위원회에 일임하고 방관하는 일이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으로 설립된 특별조사위원회는 피해자 지원과 추모사업에 대한 원칙을 수립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치유와 회복을 위한 피해자들은 어떠한 권리를 가지는지 짚어보자.

3. 치유와 회복을 위한 권리

피해자는 피해 당사자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 위험 신호이며, 동시에 존엄 회복의 주체이다. 피해자 중심으로 피해대책이 짜여져야 하며, 이는 피해자의 권리다. 다시는 이러한 재난과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피해자는 참사 직후에 이루어진 활동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 발생 가능한 피해를 고려해 생애주기에 따른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 당국은 참사 피해자에 대한 정의를 점검하고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피해자의 범주에 당사자와 그의 가족뿐 아니라 구조와 지원과정에 참여한 이들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피해와 유관한 범위에 노출된 참사 피해자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피해 범주 역시 생명과 신체, 정신적, 재산상 직접적 피해는 물론 구조활동ㆍ피해자 지원 과정과 언론보도ㆍ불건강한 사회적 소통방식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2차적 피해를 포괄해야 한다. 충분하고 적절한 지원받을 권리는 피해자가 가지는 당연한 권리다. 또한 추모와 기억할 권리는 또 다른 재난을 막고, 피해자를 치유하기 위한 권리다. 추모와 기억의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 보장받을 수 있는 적절하고 충분한 조치를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 피해자들의 의견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표현하지 않고 참아내는 고통도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현대의 모든 재난참사 발생은 사회적 원인과 맞닿아있기에 책임도 사회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 따라서 모든 재난참사 지원의 1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가 지원 범위는 치유를 위한 공동체 지원까지 포함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평등하고 차별 없이 권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정보 접근에 있어 권리 침해 없이 친절한 정보 제공을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절차는 간소하고 통합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정부는 국가와 사회가 기억해야 할 내용과 방식에 대한 연구와 조사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유무형의 추모사업 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해, 피해자들과 시민들을 위한 추모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추모사업은 추모(기억), 안전, 치유, 교육 내용을 포함해 통합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추모사업은 과거의 슬픔을 딛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접근성, 지속성, 정서적인 것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추모사업은 정치적 고려보다 피해자 입장에서 계획되고 집행되어야 하며, 지역사회 치유와 미래세대를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피해자들은 운영과정에 참여하고 갈등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력 받아야 한다. 세월호 선체와 교실, 유품 등 진상 규명 및 추모와 기억에 관련된 모든 것은 신중히 보관되어야 한다.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은 진상규명이 끝난 후에 한 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설명과 사과가 전 과정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사회적 비용을 치루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마땅한 의무다. 이를 위해 정부기관 뿐 아니라 기업과 언론도 치유와 회복의 의무를 진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 또한 피해자들이 원래 삶으로 복귀하도록 함께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덧붙임

박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