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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네이스(NEIS)의 현장에서 - 김재홍 (서울 ㄱ고 교사)

고백 : 한 학기만에 담임 그만둔 부끄러운 사연

국무총리실 산하 교육정보화위원회로 네이스(NEIS) 문제 해결의 공이 넘어가 있는 사이, 일선 학교현장에서는 학생과 학부모의 의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네이스가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학교의 네이스 시행 결정과 관련해 담임 사표서를 던진 한 교사의 고민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서울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이른바 명문(?)학교입니다. 실업계에서 손꼽히는, 특히 이쪽 지역에서는 외형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타 학교 선생님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학교지요.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최근 저는 한 학기 동안 정든 아이들 곁을 떠나기로 하고 담임 사표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무슨 사연이냐구요?

현재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즉 네이스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네이스는 '인권과 효율성 가운데 무엇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일부 교직단체간의 힘겨루기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네이스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단위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고 교사들의 갈등을 부추겨 왔습니다.

저희 학교에서도 네이스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일부 선생님들과 네이스는 '학생 인권'의 문제이며, 따라서 이는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교육부가 단위 학교로 책임을 떠넘긴 후, 저희 학교에서도 네이스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가 열리던 날, 다른 교육 일정과 겹쳐 저는 부득이하게 그 회의에 참가하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회의 결과를 들어보니, 투표에 부친 결과 네이스 29표, 수기 25표, CS 14표, 기권 4표, 무효 1표가 나와 네이스로 사용하기로 결정됐다고 합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교사들끼리 투표로 결정하다니...

네이스 문제가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바로 네이스가 인권침해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네이스를 사용할지 여부부터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네이스를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 다음에 어떠한 절차와 방법으로 시행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고, 반대로 사용에 반대하는 결론이 나왔을 때는 다른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도외시하고 네이스와 CS, 수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놓은 다음, 다수결로 결정한 것은 심각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네이스 사용 여부부터 물어봤어야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제가 뒤늦게 이를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단 네이스 사용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네이스로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교사들의 다수결'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인 학생과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고 불과 29표의 찬성표를 가지고 -기권과 무효표를 빼더라도 네이스 반대표가 39표로 더 많았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 없이 네이스를 강행하는 것은 정보인권에 대한 커다란 침해인 것입니다.

그래서 네이스를 시행하기 전에 가정통신문을 보내 학생과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은 후 시행하자고 학교장에게 건의를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현재 네이스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있고, 교육부장관을 포함한 교육부 담당 관리와 교육감들이 고발되어 있으며 졸업생들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제 설명이 부족하였다고 판단하고 다시 한번 건의를 하였습니다. '특기적성교육'뿐만 아니라 지난번 '헌혈' 때도 동의서를 받지 않았느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침해 판정이 난 네이스를 시행하려면 최소한 학생과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아야 교사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부담을 없앨 수 있지 않겠느냐, 나아가 동의서를 받아든 학생과 보호자는 우리 학교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건의조차 거부당했습니다.


학생·보호자 동의 요구에 콧방귀

이런 와중에 담임 42명 중 네이스를 인증하지 않은 담임은 '너 하나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교사에게 담임은 '교직 생활의 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어우러지는 생활이 교직의 근본적 목적이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담임 역할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네이스의 시행이 분명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안일진데, 학생과 보호자의 동의조차 없이 담임으로서 학생들의 정보 인권을 인터넷에 띄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중간에 학생들을 버린다는 자책과 비판을 받을지언정, 학생의 정보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핑계로 담임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끝까지 담임의 직을 지키면서 네이스 인증을 거부해 학교 전체에서 네이스로 인해 학생의 정보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막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겁하고 용기가 없어 도망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인권 침해하느니 담임 그만두기로

담임 교체가 확정된 후 아이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글을 마지막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핑계

미안하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각자의 생각, 관점에 따라 많이 다른 것 같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 없는 거구. 사람은 항상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가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겠니? 그렇다고 내가 너희들과 영 못 보는 것도 아니구. 삼겹살파티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