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출범 하루 전인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241 GP 3번 벙커에서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군당국은 사건 발생 2시간만에 소대장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개월 여 동안 수사를 진행한 국방부는 "김훈 중위가 오른손으로 오른쪽 관자놀이에 자신에게 지급된 권총을 댄 후, 왼손을 이마 앞으로 뻗어 권총을 감싼 후 스스로 발사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영화 같은 JSA내 육군장교의 의문사
하지만, 이런 군당국의 수사결론은 곧 유족들의 진상규명 노력에 의해 하나하나 거짓임이 드러났다. 우선 자살에 사용됐다는 권총은 김중위의 것이 아니었고, 가장 많은 화약흔이 있어야 할 오른손에서는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은 대신 왼 손바닥에서만 화약흔이 발견됐다. 거기에 재미 법의학자 노여수 씨는 권총에 지문이 묻어있지 않았고, 밀착사가 아닌 점 등 11가지 근거를 들어 "김훈 중위는 몸부림 중에 오른쪽 손에 찰과상을 입고 머리 위를 얻어맞았다"고 결론지었다.
거기에 마치 영화 <공동경비구역>에서처럼 남과 북의 병사들이 판문점을 넘나들면서 '적과 내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들은 김훈 중위가 타살되었다는 기사를 연일 내보냈고, 이제껏 눈물로 세월을 지새던 다른 군의문사 가족들도 청와대와 국회 등에 연일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이런 비등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국방부는 사상 최초로 1998년말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을 구성하면서 1980년대부터 의혹이 제기되었던 군의문사도 전면적으로 재조사하겠다고 밝히게 된다.
새로운 증거에도 수사결과 요지부동
그후 국방부가 공개하지 않았던 사진에서 철모가 새로 발견되고, 김중위가 사망한 초소에서 격투를 벌인 흔적 등이 밝혀지게 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하지만, 국방부는 그가 자살했다는 최초의 수사 결론을 바꾸지 않았다. 유족들이 제기한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 재판부는 "자살 동기의 비합리성 등 대부분 유족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수사상의 고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사건은 현재 2심에 계류 중이다.
3성 예비역 장군인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 씨는 "국방부는 유족들이 애써서 증거자료를 확보해주면 유족을 무시하고, 대한민국 군대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협박하고는 했다. 증언해 준 사병들이 얼마나 압력을 받았으면 후유증에 시달리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또 그는 "3성 장군이었던 나에게도 이럴진대 다른 사람들은 오죽 했겠냐"며 국방부의 무책임을 성토했다.
꼬리무는 자살, 유족들의 한맺힌 투쟁
김훈 중위 사건을 계기로 군의문사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어지자 국방부는 1999년 9월 사상 처음으로 군의문사 및 군폭력 사건에 대한 육·해·공군 합동 특별조사단을 구성했다. 당시 특별조사단은 총 166건의 민원을 접수해 재조사를 벌였지만, 자살이 타살로 바뀐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또, 최근 5년 동안 군에서 사망자는 1998년 248명에서 지난해 158명으로 35%나 줄었고 자살사고도 102건에서 지난해 79건으로 줄어들었지만, 전체 사망사고 가운데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 지난해에는 군대내 사망사고의 절반 가량이 '자살'로 나타났다. 이런 재조사나 수사결과는 유족들의 군당국에 대한 불신만 높일 뿐이었다.
김훈 중위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인권위원회에 모이기 시작한 유족들은 전국군폭력희생자유가족협회(전군협)와 군의문사진상규명과군폭력근절을위한가족협의회(군가협)를 탄생시켰다. 군가협에는 현재 50여 가족들이 모여 있고, 이들은 국방부 앞에서 어머니들의 삭발 단식농성 등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하면서 군의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해왔다.
2001년 3월 부대 배치 2주일만에 아들이 자살했다는 통보를 받은 군가협 주종우 회장은 "군 수사는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다. 초동수사도 엉망이고, 모든 것을 자살로 꿰어 맞추는 일방적인 수사다. 군 사망사건을 군수사체계에 맡겨서는 의문사만 늘어날 뿐이다"면서 그렇기에 군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군의문사 특별법 제정 절실
이런 주장은 지난해 허원근 일병의 타살을 밝힌 바 있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망사건 전담 상설 조사위원회 설치' 등을 권고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군 인권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른 요즘, 군의문사 문제는 군당국의 손을 떠나 국회에서 제정되는 특별법을 통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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