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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테러와의 전쟁, 피 흘리는 인권 ②

테러방지법이 약속하는 '공포사회의 테러'

# 2004년 12월. 이라크에서 장기전의 늪에 빠진 미국은 한국의 전투병 추가파병을 요청하기 위해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다시 한국에 파견했다. 럼스펠드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국인 평화운동가 한 사람이 '이라크 침략과 파병 압력 중단'을 외치며 그를 향해 페인트 풍선을 던졌다. 주요 외국인사의 신체에 위해를 가했다는 이유로 그 평화운동가는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로 둔갑해 처벌을 받았다. 그로부터 1년 후, 그가 속한 단체는 우연히 국정원 산하 대테러센터가 자신들의 전화와 이메일은 물론 각종 활동까지 사찰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에 맞선 인간방패 활동으로 평화운동의 대명사로 떠오른 '국제연대운동'. 2004년 8월, 이 단체 활동가들은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 맹위를 떨친 미국의 열화우라늄탄이 일본으로 대량 수출된다는 정보를 입수, 일본 근해에서 수송선 주변을 돌며 무기거래 반대 뗏목시위를 벌였다. 이 단체 활동가들이 '2005 서울 국제평화회의' 참석차 한국에 들어오려고 하자, 대테러센터는 테러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들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이들의 뗏목시위가 전쟁 억제와 국방이라는 '평화적 목적'의 핵물질 수송을 방해한 테러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아흐마드. 그는 요즘 수상한 사람들이 미행을 한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곤 한다. 전화기의 감도 떨어졌다. 아시아 정상회담의 서울 개최를 열흘 정도 앞둔 어느 날, 난데없이 강제출국 명령이 떨어졌다. 그가 테러단체로 규정된 '제마 이슬라미야'와 관련이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였다. 하지만 그에겐 해명할 기회도, 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흐마드 씨의 사건을 접수한 한 인권단체는 그가 테러행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대테러센터의 행위를 인권침해로 비판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대테러센터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이 인권단체의 대표를 감옥으로 보냈다.

# 대통령 선거와 국제안보연례회의를 동시에 앞둔 2007년 가을. 대테러센터는 테러의 위험이 높다며 정부종합청사와 공항, 주요 지하철역 등에 경찰 특수부대를 배치했다. 며칠 후에는 시설보호 인력이 부족하다며 군대까지 동원해 오가는 시민들의 가방을 뒤지고 '수상한 인물'들을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연행하는 등 사실상의 '계엄상태'가 초래됐다. 광화문역에서 대테러센터의 직원에 의해 부당하게 연행돼 영장도 없이 구금된 채 강압적인 수사를 받았던 김종현 씨는 사흘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김 씨는 가해자를 고소하는 등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 했지만, 자신을 연행하고 수사한 대테러센터 직원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이들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최근 국정원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경우, 우리에게 '약속된 공포사회'의 모습들이다.

현 테러방지법안은 △항공기의불법납치억제를위한협약등 9개 국제협약이 범죄로 규정하고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테러'로 규정하고 △국정원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해 각종 대테러활동의 기획·지도·조정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며 △센터의 장인 국정원장이 의심스러운 외국인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그의 추방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군·경 특수부대의 출동과 시설 보호·경비를 위한 군병력의 동원이 가능하도록 하며 △센터의 직원들이 테러와 관련한 허위사실의 신고 또는 유포 등을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이 '테러'의 개념을 국제협약으로부터 끌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개념이 여전히 매우 포괄적·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 시민과 민간단체의 정당한 활동마저도 '테러행위'로 규정될 위험성이 높다. 또한 국정원에게 전체 사회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권과 광범위한 수사권, 외국인 추방 요구권까지 부여함으로써, '공포사회를 지배하는 빅 브라더'가 될 수 있도록 했다.

테러방지법이 제정될 경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