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게 부모님께 제 결심을 말씀 드렸습니다. 다행히도 생각했던 것만큼 걱정은 안 하셨습니다. 이라크 전쟁터로 보내진 다른 전우들이 목숨 잃고 다치게 되면 그 부모님들 마음은 더 힘들고 고통스럽지 않겠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은 아무 말 없으셨고 어머님은 몸조심하라며 내복을 꺼내 주셨습니다."
이등병 계급장 달고 첫 휴가를 나온 현역 군인이 자대 복귀를 거부한 채 '이라크 파병 결정 철회'를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전남 장성 상무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고 있는 이등병 강철민 씨. 4박5일 휴가의 마지막날인 21일, 그는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이 철회될 때까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아래 KNCC인권위) 사무실에서 농성을 이어나가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강 씨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이등병의 편지'를 낭독하고 "자국의 군대가 자국의 국토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는 것 이외에 침략전쟁의 도구로 쓰여진다면 그것은 이등병인 제가 아니라 어느 누가 보아도 틀린 결정"이라면서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이라크 파병 결정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군, 침략전쟁 도구 되어선 안돼"
대구가톨릭대학교 철학과에 재학하다 올 7월 입대한 강 씨(00학번)는 이라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이 계속 마음에 사무친 데다 정부의 추가 파병 결정까지 나오자 수많은 고민 끝에 이 같은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오종렬 공동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격려의 말을 전했다.
KNCC인권위원회 정진우 목사는 "강철민 씨는 자신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 우리 모두의 생명을 구하는 행동에 나섰다"며 "이 '평화의 불씨'를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연대회의' 집행위원장 한홍구 교수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침략전쟁 동참으로) 헌법을 어기고 최말단의 이등병은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며 "군복을 입은 시민에게서도 파병 반대 목소리가 나온 것을 소중하게 기억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강 씨는 한 교수와 성공회대 학생들로부터 하루 앞선 생일케익을 건네 받은 뒤, KNCC인권위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농성에 들어갔다. 이곳은 89년 군 최초의 양심선언이었던 이동균 대위·김종대 중위의 군명예선언, 90년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현 기무사) 민간인 사찰 양심선언 등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복귀를 하지 않을 경우 '군무이탈'로 처리돼 군법에 따라 남은 복무기간에 준하는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다. 민변의 임종인 부회장은 "헌법을 위반하는 침략전쟁 동원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재판에서 강 씨의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침략전쟁 동원 저항 무죄"
강 씨에 앞서 지난 13일 평화주의 신념에 기반하여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지원연대' 염창근 사무국장은 "강철민 씨의 선언을 계기로 우리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만든 군대가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쓰이는 모순적 상황에 대한 성찰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염 사무국장을 비롯한 병역거부자들은 강 씨와 함께 연대농성에 결합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오후부터 군은 가족들을 동원해 강 씨의 복귀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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