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과 시름해 온 2003년의 배가 곧 닻을 내리고 정박할 채비를 하고 있다. 때로는 광풍이, 때로는 순풍이 찾아오지 않는 해가 있겠는가마는 올해는 유달리 격랑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올 한해 우리의 마음을 묵직하게 짓눌렀던 절망의 기억들은 참으로 많다. 새해 벽두 우리에게는 두산중공업의 한 늙은 노동자, 배달호 씨의 분신 소식이 날아들었다.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기기 이틀 전, 그는 "아빠가 해 준 게 없어 너무 미안하다"며 작은딸을 껴안고 어깨를 들썩였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10월에는 김주익, 이용석, 이해남 씨가 손배·가압류와 노조탄압에 항거하며 자신의 몸뚱아리를 내던졌다. 이들의 죽음은 소유권에 짓눌린 노동기본권이 이 땅에서 가장 천대받는 인권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우쳐주었다.
3월에는 "이라크인의 절반은 어린이"라는 양심의 외침을 찢는 미국의 폭탄이 기어이 이라크로 향했다. '침략과 학살의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이 세계에서 한국정부와 국회는 침략군의 파병을 결정했다. 그 후 우리는 낯선 외국군의 총부리 앞에서 초점을 잃은 이라크 아이들의 눈동자와 어린 아들의 주검을 껴안은 채 고개를 떨군 아버지, 원인 모를 질병과 정신적 고통으로 본국으로 후송되는 미군병사들의 모습을 '충격과 공포'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추악한 전쟁이 낳은 악몽은 이라크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아프간에서도 민간인과 평화운동가들은 학살군의 표적이 되어 숨져갔다.
그리고 다시 이 땅에서도 가슴을 찌르는 송곳 같은 소식들이 꼬리를 물었다.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달리던 대구지하철은 화마에 휩싸인 채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송두율 교수는 이 땅의 민주주의 수준을 과신했다는 그 단 하나의 죄로 37년만에 찾은 고국땅에서 차가운 철창 아래 갇히는 신세가 됐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온 노동자들은 고장난 몸을 이끌고 기계처럼 혹사당해야 했다. 멕시코 칸쿤에서는 한 농민이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았고, 한 치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절망의 안개 속에서 가난한 가족들은 죽음의 배에 몸을 실었다. 목숨 걸고 세상에 나오던 장애인들은 정말 목숨을 잃어야 했으며, 이제는 쓸모 없어졌으니 나가라는 매몰찬 요구에 이주노동자들은 목을 매달았다.
그 사이 이제야 겨우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한참이나 되돌리려는 시도들이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렸다. 국정원과 경찰 권력에 인권을 진상하려는 테러방지법안과 집시법 개악안은 의사봉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그야말로 힘으로 굴복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시장의 권력과 그 권력의 유지를 위한 억압적 질서를 '나라경제'니 '국익'이니 '공공의 안전'이니 하며 기꺼이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우리는, 절망적인 현실에 몸부림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민중들과 만났다. 우리가 부등켜안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서로의 가슴을 데워준 연탄불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반년째 노란색 반핵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는 부안의 주민들은 밀실행정을 밥먹듯 하는 정부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부안도 안 되지만 다른 지역으로 핵폐기장이 옮겨가서도 안 된다는 그들에게서 조악한 님비즘을 뛰어넘은 진정한 연대의 가치를 본다.
국적을 뛰어넘어 평화지킴이가 되어 이라크로 날아간 사람들, 파병반대 '소망의 나무'를 함께 키운 시민단식모임, 휴식을 포기하고 주말 거리를 달린 사람들, 학교의 탄압에도 반전뺏지 달고 열심히 학교간 아이들, 이라크에 총 대신 꽃을 보내자며 전국 유랑을 시작한 '평화바람' 단원들, 군대 복귀를 거부한 한 이등병의 모습에서 평화의 씨앗이 우리 내부로부터 움트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오늘도 '전과자' 조석영 씨는 피감호자들의 인권을 위해 사회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앞 1인시위에 나섰다. 동료를 떠나보낸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철폐의 그날을 위해 꺼져가는 노동기본권에 생명수를 길어나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진실을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는 이들의 힘겨운 싸움들도 이어지고 있다.
올 한해 품었던 우리들의 소망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긴 '겨울터널'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2004년에도 우리는 아주 긴 호흡으로 서로를 일으켜세워야 한다. 하지만 절망의 우물에서 희망의 두레박을 길어올리는 민중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의 질서가 조금씩 건설되고 있음을 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