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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겨울잠 깨워야 할 법사위 계류 법안 ⑤ : 인권영향평가제 도입 법안

인권영향평가제로 사전예방체계 구축해야


정부기관이 법령을 제·개정하거나 정책·사업 등을 입안하고자 하는 경우 사전에 인권영향평가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인권영향평가제' 도입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제출돼 있으나, 16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지난 12월 초 천정배 의원(열린우리당)을 비롯한 국회의원 18인은 인권영향평가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마련해 법사위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관계 국가행정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 법령·정책 등을 제정·입안하고자 할 때 인권영향평가서를 작성해 국가인권위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평가서를 작성할 때 설명회 또는 공청회를 개최하여 의견을 수렴토록 하며 △해당기관이 평가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나 평가서 검토 결과 필요할 경우, 국가인권위가 해당 기관에 추진 중인 법령·정책 등의 중단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개정안은 국가인권위의 예산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인권위를 감사원 등과 마찬가지로 예산회계법상 독립기관으로 간주하는 한편, 진정 제출이나 진술, 증언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준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이처럼 개정안이 통과되어 인권영향평가제가 도입되면 집시법 개정이나 네이스(NEIS) 도입, 지역개발정책 등이 낳을 수 있는 인권침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팍스로마나 이성훈 사무국장은 "국가인권위의 설립이 인권보장과 증진을 위한 하드웨어에 해당한다면, 인권영향평가제는 인권침해를 체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획기적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면서 "올해 국가인권위가 수립하려는'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 따른 부처간 정책협의가 실효성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도 이 제도의 도입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침해 예방 위한 소프트웨어

하지만 이 개정안은 현재 법사위에 상정조차 못되고 있는 형편이다. 과거사 청산 4대 법안 등 이미 상정된 주요 법안의 처리문제로 시끄러운 법사위에 아직까지 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이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개정안 마련을 주도했던 천정배 의원이 '정치개혁특위'에 결합하면서 법사위원 자리를 내놓음에 따라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할 수 있는 핵심 동력마저 사라져 버린 상태다.

이에 대해 천정배 의원실 측은 "법사위 3당 간사들이 의지만 있다면 2월 국회에서 법안을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공은 법사위로 넘어갔다는 입장을 보였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행법상 '사전 통보 조항'의 확대 강화를 기대할 수 있는 국가인권위 측도 별다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 강명득 인권정책국장은 "평가제의 도입은 바람직하지만 의원 입법 사항이라 인권위가 나서서 의견을 표명하기는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상정조차 못된 채 폐기될 위기

이와 함께 개정안의 내용을 좀더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성훈 사무국장은 "현재의 개정안에는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국제조약들이 국내 인권에 미치게 될 영향을 사전에 검토해 국제인권기준과의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평가의 범위를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인권영향평가서의 작성 과정이 형식적으로 진행돼 해당기관의 입지를 강화하는 방편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고,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해당 기관이 수용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도 보완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개정안이 16대 국회 폐막과 함께 자동폐기될 경우에는 다음 17대 국회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 때는 인권위원 선임과정이나 서면조사 우선주의의 문제, 위증에 대한 처벌 불가능 등 국가인권위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대폭적인 개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