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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장호순의 인권이야기 ◑ 언론의 자유와 인터넷 실명제


소위 '인터넷 실명제' 법안이 9일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원회(아래 정개특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정개특위가 법사위에 상정한 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려면 실명확인과 주민등록번호 조회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에 대해 인터넷 언론사와 시민단체들은 표현의 자유와 자기정보통제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인터넷 실명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정개특위는 국민을 외면한 채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국 정치현실을 뜯어고치기 위해 만든 기구이다. 그런데 정작 해야할 일은 안하고 오히려 국민이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도록 선거법을 개악하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인터넷 실명제'는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어떤 의견을 제시할 때 떳떳이 이름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후보자들을 근거 없이 헐뜯고 비방하는 사례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정치인들에 대한 무책임한 비판은 줄어들지 몰라도, 국민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책에 대해 기탄 없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 정치인들에게는 득이 되지만 국민에게는 실이 되는 것이 '인터넷 실명제'인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되면 정치인의 비리를 고발하거나, 권력에 도전하거나, 국민다수와 배치되는 비주류 견해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보복의 가능성 때문이다. 헌법에서 금지한 '사전검열'과 다름없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본래 언론자유란 부작용을 전제로 하고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즉 언론자유가 오용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언론자유를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안보를 위협하거나,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성윤리를 파괴하는 반사회적인 표현조차도 '사전검열'은 원칙적으로 할 수 없고, 그러한 표현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후 그에 대한 처벌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언론자유의 오용가능성이 명백한 데에도 언론자유를 불가침의 권리로 보호하는 것은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없는 사회라면 진정한 여론이 형성될 수 없고, 국민이 여론을 형성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혁정책은 부패청산을 바라는 국민의 여론에 의한 것이다. 정개특위도 그래서 구성된 것이다. 이러한 국민여론은 인터넷이라는 공론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권력과 자본에 의해 오랫동안 점령되어 온 신문이나 방송 등 대중매체는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기보다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권력을 감시비판 하는 언론의 기능은 퇴화되었고, 정치부패와 부조리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그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이 할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 때문에 언론의 사실은폐나 여론조작이 힘들어졌고, 권력자들도 국민여론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인터넷은 모든 국민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진정한 공론장으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정개특위는 일부 부작용을 없앤다는 명분 하에 '인터넷 실명제'를 법제화하려들고 있다.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다. 그야말로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같다. 헌법을 유린하고 여론을 외면하는 정치인들에게 준엄한 국민의 심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장호순 님은 순천향대 신문방송학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