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라크에서 '팔루자 학살' 만행에 이어 미·영국군의 포로들에 대한 전기고문과 성폭행, 나체 피라미드에 이르기까지 야만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분명 군대의 '추억' 사진을 찍듯이 고문 피해자들 옆에서 포즈를 취하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이라크 인들의 인권과 해방을 위해서"라는 명분은 이 적나라한 지옥의 참상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미군은 원래 잔인하다고 말한다. 미군의 타국 점령의 역사는 학살과 강간, 고문과 같은 끔찍한 반인륜 범죄의 연속이었으므로 그 말은 역사적 사실이며, 이라크에서의 잔혹극은 그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이 말이 진실인가. 서방의 선진국들이 벌였던 전쟁에서는 이와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행위가 없었던가? 이 나라 군대가 베트남에서 저질렀던 잔혹극은 다른 성질의 것이란 말인가? 답은 '미국이 원래 그래서'가 아니라 '전쟁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전쟁은 상대방을 극단의 무력으로 제압하고, 자신의 영토를 배타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거기에는 일상적인 인간성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공포가 있기 마련이며, 용서와 포용, 이해보다는 극단적인 적대행위가 정의로 치장되고 살인을 비롯한 온갖 범죄가 전쟁영웅의 구성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그것이 전쟁이다.
이러한 전쟁을 거부하는 일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마침 오늘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다. "살상을 거부할 권리"를 주창하는 세계의 평화운동 단체들이 칠레를 본거지로 전세계에서 '군인을 집으로!'란 행사를 조직한다. 이미 병역거부는 서구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권으로 자리잡아가고 있고, 각국은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에게 대체복무를 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유엔에서는 매년 결의안이 나오고 있어서 이제 국제조약의 전 단계에 이를 정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어떤가. 이라크의 비극이 전해진 이 마당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추가파병 절차를 밟고, 전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젊은이들을 감옥에 가두는 야만행위를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진정 '살인의 추억' 만들기를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래서 오늘, 전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이라크 파병 철회를 위한 촛불을 밝히자. 제발 잔혹극의 추억 만들기에 동참하는 일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 2573호
- 2004-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