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을 재조사한 국방부 특별조사단(아래 특조단)의 군 수사관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 조사관에게 총을 쏜 충격적인 사건이 발표됐다. 12일 의문사위는 지난 2002년 특조단 조사에 참여했던 현역군인 A씨가 올 2월 의문사위 박종덕 조사 3과장 외 조사관 1인을 만난 자리에서 “박 과장 얼굴 옆 하늘을 향해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당시 ‘총’소리가 선명한 녹취 테잎도 이날 공개됐다.
무엇이 두려워 총까지 쏘나
국방부에서 제공하지 않고 있는 특조단 조사기록을 A씨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의문사위는 A씨에게 기록 제공을 설득해 왔다. 그러나 A씨가 여러 차례 약속하고도 협조를 미루자, 의문사위는 지난 2월 A씨 집을 실지조사차 방문했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2월 26일 오후 6시경 집에 있던 A씨의 처가 자료를 제공했고, 오후 7시경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집을 비웠던 A씨를 대구 모처에서 만났다. 당시 녹취 기록에는 조사관에게 “(가져 간)기록 가져오라고 해”,“당신도 죽이고 나도, 죽을 꺼야”라며 외치는 A씨의 격앙된 목소리가 담겨 있다. 박종덕 과장은 “A씨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대고 자해를 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료를 모두 돌려 줄 수밖에 없었다”며,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입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가족과 고인에게 사죄 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러한 의문사위 발표에 대해 A씨는 자신은 “가스총 공포탄을 쏜 것이고, 의문사위 조사관이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해 자료를 훔쳐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사위는 또 3월, 조사과장 등이 특조단장이었던 현 1군사령관 정수성 육군대장을 만났을 때 정 씨로부터 “1기 의문사위처럼 나한테 말도 한마디 없이 언론에 까발리면 당신네들 다 죽어”라는 협박을 수 차례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의문사위는 지난 7일 위문사위 폄하 발언 및 조사관 협박과 관련해 정 전 특조단장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 전 특조단장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12일 기자회견에서 의문사위는 A씨가 보였던 위협적이고 극단적이 모습과 정 씨가 의문사위에 가했던 협박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추정했다.
새로운 자료로 밝혀지는 은폐 사실
한편, 의문사위는 5월 7일 A씨로부터 라면 1박스 정도의 자료를 받았다. 그러나 특조단 조사시 녹취한 참고인 진술과 디스켓 등 중요 자료는 파기되어 받지 못했다는 것. 의문사위는 12일, 제공받은 서류분석 결과 “특조단이 허일병 사건을 재은폐했다”고 발표했다.
2002년 11월 특조단은 허원근 사망 사건 당일(84년 4월 2일) 오전 △현장에서 회수된 3발의 탄피가 모두 허 일병의 총에서 발사된 것이고(1개는 3일에 발견) △분대장 복귀신고 등 정상적인 일과가 진행됐고 △총성은 10시~11시경에 3발이 청취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새로 입수한 자료 즉, 2002년 특조단이 조사하고도 의문사위에 넘겨주지 않았던 기록에 의하면 2002년 특조단의 발표는 ‘명백한 왜곡이며 은폐’라는 것이다. 의문사위는 조사 기록에 △당일 근무자는 물론 헌병대 수사관조차 총성이 2발이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부검을 맡았던 박 모씨는 4일에 ‘탄피가 2개뿐’이라는 헌병대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특조단 조사관조차 ‘감정의뢰 된 총기가 허 일병 것임을 확신할 수 없고 총기감정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자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문사위는 “정수성 전 국방부 특조단장이 허 일병 사건을 재은폐하여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속였다”며 이번 사안에서 국방부의 태도와 조치를 예의 주시하고, 고발 등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