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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적응하거나, 혹은 저항하거나

얼마 전 이사를 했습니다. 새로 이사 간 집에 대해 누군가 물어오면 제가 항상 돌려주는 말이 있어요. “지은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먼저 나서서 초대하기에는 미안한 집”이라는 답변입니다. 제가 원하던 여러 조건에 딱 들어맞는 집이라 별다른 망설임 없이 곧바로 계약했지만 그럼에도 단 한 가지 걱정은 높은 층수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앞으로 그 집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며 걱정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이사한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저는 6층을 걸어서 오르내리는데 꽤나 익숙해졌습니다. 사실 시간으로만 따지면 이전에 살던 11층 집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시간과 비슷한 정도인 듯해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혹여 다른 층에서 여러 번 멈추게 되는 시간 등을 생각하면 제 발걸음대로 휘리릭 오르내리는 지금 오히려 시간은 더 단축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아주 가뿐한 정도는 아니지만, 처음에 걱정한 만큼 죽을 듯이 힘들지도 않습니다. 숨이 차고 허벅지가 땅겨올 때쯤 도착한 6층에서 보게 되는 멋진 풍경에 마음을 뺏기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저는 새로운 집에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조건이 변화할 때 개인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변화한 조건에 적응하며 그다음 일상을 살아가곤 하지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변화처럼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데 익숙해지고,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조심하며, 해외여행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다가도 가끔씩 흠칫 놀랄 때가 있어요. 요즘 언론에 많이 등장하곤 하는 ‘뉴 노멀’이라는 단어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식’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당황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런데 당연하던 상식이 당연하다는 듯이 바뀔 때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적응하지는 않습니다. 올해 초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방역 당국이 방역과 안전을 위해서 감염인의 동선을 세세하게 공개하고, 서울시는 휴대폰 기지국 정보까지 수집하며 감염 의심인 추적에 열을 올리고, 언론이 감염인의 특정 정체성을 부각한 기사를 대서특필할 때,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상황이 당연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결과 동선 공개 수칙이 마련되었고, 수집한 개인정보 폐기 기준 또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부당함에 적응하기보단 저항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왔고, 또 바꿔나가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이사한 집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저는 6층을 걸어서 오르내리는 데 적응해가고 있는 스스로를 느낄 때 기쁩니다. 이사를 앞두고 걱정이 컸지만 정작 살다 보니 별것 아니었구나 싶어요. 이사를 도와주느라 집을 몇 번 오가며 지칠 대로 지친 친구 한 명은 창문 밖으로 도르래라도 설치해서 오르내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도르래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적응하는 일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바도 없었지요. 게다가 6층을 걸어 올라간 끝에는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우리 집이 있으니, 적응한 결과가 썩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변화에 그저 적응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적응한 끝에 느끼는 안정감도 소중하지만, 부당하다고 느낄 때 적응하기보단 저항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다거나 원래 그렇다는 말에도 꺾이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더 나아지리라 믿으니까요. 이를 위해서라도 ‘적응할 일’과 ‘저항할 일’을 잘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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