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앞에 지하철역이 새로 생겼다. 새로 생긴 역이라 깨끗하고, 집 가까이 있어서 자주 이용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 편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감시카메라가 역 입구를 벗어나는 순간까지 나를 따라오기 때문이다. 까만 모자를 쓴 그 녀석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면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골목골목, 놀이터, 은행 등 이미 생활 곳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감시카메라는 무수히 많다.
'저 녀석은 너를 위한 것이야 너를.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지 모르는 테러, 혹은 여러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카메라야. 저 녀석 덕에 늦은 시간에도 마음놓고 다닐 수 있잖아. 그러니까 괜한데 신경 쓰지 말라구'
그렇다. 내가 말썽을 부리지 않는 한 녀석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녀석은 그저 카메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고 부아가 치민다. 그것은 단지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코를 후비거나, 애인과 애정행각을 벌일 수 없어서가 아니다. 내가 정말 테러나 강간, 살해를 계획하고 있어서 놈이 방해가 되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까지 나의 허락 없이 나에 관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기 때문이며, 감시카메라에 대한 규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말 순수한 의도로 범죄 예방만을 위해 녀석이 쓰이고 있는지 여전히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감시카메라가 '나의 생활을 드러낼지 아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할 만큼 효용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몇 년 전 현금 카드를 잃어버렸던 친구는 범인이 카메라가 있는 현금입·출금기에서 돈을 빼갔음에도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범죄가 감시카메라를 피해 일어날 수 있으며, 고장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강남의 어느 동네는 골목마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서 큰 효과를 보았다며, 한 대의 감시카메라가 열 명의 경찰보다 낫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효과'라는 것이 감시카메라 덕분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증명된 바가 없다. 결국 범죄 예방과 증거 확보라는 여전히 증명되지도 않은 이유로 프라이버시는 무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감시카메라를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국에 감시카메라를 달자고 할 걸 그랬다. 이왕 다는 거 가정에도 달아서 가정폭력도 줄이고, 혹시 범죄자가 찍힌 필름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될 수도 있으니 그 때 창피하지 않게 바르게 생활하라고 할 걸 그랬다.
- 2633호
- 박신혜
- 200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