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권법, 브로커 지원 법
식량을 찾아 중국과 북의 국경을 넘나드는 경우는 '90년대 식량난' 이전에도 존재해왔다. 60년∼62년 중국 대기근 당시 중국에서 거주하던 30만 여명의 조선족이 북으로 이동했고 그 중 절반은 북에 정착했다. 북정부는 이들을 '경제유민'으로 받아들여 정착을 허용했던 것. 중국정부 역시 90년대 이후 식량난으로 유입된 북주민들을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일시적 이탈자로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중국에서 탈북자 문제를 조사하고 돌아온 민주노동당(아래 민노당)에 따르면 90년대 식량난에 따른 탈북자들 대부분이 함경도 출신이며 80%가 여성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북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한편, 중국 농촌으로 팔려가 자식을 낳은 경우 중국에 머물기 원한다고 한다. 정치적 동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이동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는 지적이다.
재중 탈북자가 20∼30만에 이른다는 일부의 주장도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지난 8년간 탈북자들을 취재해 온 조천현 씨는 "탈북자의 숫자는 중국 공안 외에는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탈북자들은 조선족 거주 지역에 주로 살고 있는데, 실제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족이 총 1백 70만 정도, 탈북자가 그중 3만 명 정도라고 가정하면 중국 공안이 연길 아파트 하나를 수색할 때 1명 정도는 발견되어야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민노당이 만난 연길주 공안국출입국관리처 부처장 역시 "연변에 40만 명이 살고 있는데 그중 3만∼5만 명이 탈북자라면 금방 티가 나고 사회적 문제가 된다"며 실제로 약 1만 명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조 씨와 중국 공안 당국 모두 식량 때문에 탈북하는 사람들은 2000년 이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고 증언한다.
'기획탈북'은 탈북자의 경제적 취약성을 이용해 특정 목적을 얻으려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기획탈북을 진두지휘하는 브로커의 배후에는 일부 NGO와 선교단체 그리고 정보기관이 도사리고 있는데 이들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탈북'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 조 씨는 실제로 "정보기관의 요원 박 모씨가 연길 두레마을에서 선교사로 위장 활동하다가 추방되었고, 군 정보기관의 임 모 중령이 조선족을 통해 북의 문건을 빼내오려다 발각되어 조선족은 처벌을 받았지만 임 중령은 한국에서 오히려 진급되었다"고 정보기관의 '활약상'을 전했다. 이와 같은 일에 가담한 탈북자 출신 브로커들은 '한국 정부의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고 조 씨는 심각성을 전한다. 중국 당국은 현재 브로커들의 활동이 '주권침해이며 치안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것'으로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브로커들을 상당히 들뜨게 만들었다. 조 씨가 만난 브로커 최모 씨는 "미국 NGO를 소개시켜 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행위가 북한인권법으로 인해 정당화되는 한편 돈도 벌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북한인권법은 '탈북자 지원'하는 법이 아니라 '브로커 지원법'이라고 조 씨는 확신한다. "지금도 약간의 돈만 있으면 북에서 사람을 빼오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북주민이 합법적으로 두만강을 건너는 것은 50달러면 되고, 1백 달러만 있으면 북에 핸드폰이 들어간다. 핸드폰을 통해 북주민은 쉽게 브로커들과 통화할 수 있다." 조 씨는 미국의 자금은 이와 같이 기획탈북을 가속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개방하고 싶어도오히려 이러한 브로커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세력들로 인해 봉쇄당하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