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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비정규직 보호' 강변은 언어도단"

사회각계 원로, 비정규직 법안 철회 촉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관련 노동법 개악안에 대한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사회각계 원로들도 17일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법안 철회와 노동계와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원로 선언'을 발표했다. 원로선언에는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이돈명 변호사,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효림 실천불교승가회 공동의장 등 종교계, 학계, 언론계의 원로인사 72명이 참여했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이 정부측 법안을 비판하는 의견발표를 하고있다. [출처] 서연희

▲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이 정부측 법안을 비판하는 의견발표를 하고있다. [출처] 서연희



원로들은 선언문을 통해 정부안은 △3년 이내에서는 기간제 비정규직을 계약기간에 상관없이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간제 노동자가 거의 무제한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파견법상 대상 업무의 사실상의 전면 자유화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을 조장하는 것이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포기는 사실상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과 근로조건상의 차별을 포괄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안은 "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초과근로 수당 지급,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개별적 사후적 권리구제 도입 등 일부 생색을 내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정규직의 대규모 비정규직화, 비정규직의 합법적 양산 및 고착화, 주기적 고용불안 등으로 우리사회의 고용체계와 노동시장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것으로 귀결될 것임이 명백하다"며 "정부가 이를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으며, 비정규직의 축소와 차별 시정이라는 사회적 공론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기자화견에 참석한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명이 넘는데도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한다는 것은 노동자를 생존의 벼랑으로 몰아내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원로들은 "현 경기침체의 주된 원인은 고용의 불안정과 이와 연동된 소득의 감소로 소비를 유지·확대시킬 수 있는 소득계층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기인한다"며 "더 이상의 비정규직 확대나 차별의 방치는 저소득층 확산에 따른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질 뿐 아니라, 소득감소와 소비위축, 그 결과로 나타나는 투자·고용·생산 감소의 악순환을 구조화함으로써 한국경제 전반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원로들은 정부의 법안처리 강행 입장에 대해서도 "기업의 불법적인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규제나 시정조치에는 소극적인 반면,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이나 행동은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강경 일변도로 대처해온 정부의 태도는 기본적인 균형감도 상실한 노동 배제적 정책이라 지탄받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원로들은 특히 "노동계와의 대화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어야 할 노동부장관이 대화를 사실상 팽개치고 대신 일방적인 입장으로 비정규법제의 개악을 주도하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며 "만일 김대환 장관이 기존의 일방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을 시, 우리는 그가 노동 정책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17일 비정규직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원로 기자회견에서 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출처] 서연희

▲ 17일 비정규직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원로 기자회견에서 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출처] 서연희



이날 각계 원로와 대표자들은 현행 노동법의 미비점 보완을 통해 사실상 상시고용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보장, 동일 노동임금 보장, 불법파견의 근절,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보장 제도 확충 등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사용의 억제와 부당한 차별의 철폐, 권리보장의 방향을 갖는 실질적인 비정규직 보호대책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는 노동자에 대한 배제적 태도를 버리고 노동계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는 대화와 교섭의 자리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