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중인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아래 파견법안)'에서 파견업무의 대상, 사용 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조항도 이번 청문회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현행 파견법은 상시적 파견대상 업무를 26개 "전문지식·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 제한하고 있는 반면, 노동부가 제출한 파견법안은 파견을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규정함으로써 그 나머지 업무에 대해서는 사실상 파견을 전면 허용했다.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사업실장은 "파견법은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불법파견 △중간착취 △파견노동자 노동3권의 형해화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며 폐지해야할 제도라고 평가했다. 한양대 법학과 강성태 교수도 "파견제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합법적인 해고가 가능한) 기간제의 문제점에 더해 사용자가 분리되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간제보다 엄격하게 대상을 제한해야 하고, 한 나라의 국가경제에 근본이 되는 부분까지 파견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
고용의무 조항 있으나 마나
노동부의 파견법안에서는 사용 사업주가 3년 이상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거나 파견금지업무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직접 고용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현행 파견법은 사용 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다음 날부터 파견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금숙 청문위원이 현행 파견법에서 사용주가 고용의무를 회피한 사례에 대해 질문하자 불안전노동철폐연대 김철희 법률위원장은 "파견을 진행하고 있으면서 도급으로 위장"해 놓으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일부 방송사 같은 경우 해당노동자를 파견받고 있는데, 한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정해놓고 2년이 되기 전에 해당 노동자를 해고하도록 파견업체에게 요구하면 파견 사업주는 어쩔 수 없이 2년이 되기 전에 그 해당노동자를 해고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파견노동자, 교섭의 당사자를 잘못 잡았다고?
한편 김만흠 청문위원은 파견 노동자가 사용 사업주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한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 묻자,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철희 법률위원장은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교섭을 요청한 사례가 있으나 거의 대부분 교섭을 거부당했다"며, "해당 교섭에 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종 소송을 제기해도 노동계약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법률로 의결할 수 없다는 결정들이 대다수"라고 답했다. 이에 정인섭 청문위원은 파견 노동자가 사용 사업주로부터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국경총 최재황 정책본부장은 "노동계에서 비정규직 노동3권이 제약받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사업주가 제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교섭의 당사자를 (파견 사업주가 아니라 사용 사업주로) 잘못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노동계를 탓했다. 단체교섭에 대한 파견 사업주의 형식적인 책임만을 강조하며, 사용 사업주의 실질적인 책임은 회피한 것.
차별금지 및 시정 조치 실효성 있을까?
기간제법안과 파견법안은 차별적 처우를 임금 기타 노동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기간제 또는 단시간 노동자 및 파견 노동자가 차별적 처우를 받은 경우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비정규노동자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노동계에서 요구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는 대신 들어간 규정이다.
차별적 처우에 대한 판단 기준을 묻는 정강자 청문위원의 질문에 노동부 장화익 비정규대책과장은 "노동위원회에서 차별담당 전문가들이 참여를 해서 사례를 쌓아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사업실장은 "차별시정기구의 판례 축적만으로는 차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세울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는 주봉희 방송사 비정규직노조 위원장과 권혜영 금융노조 비정규직 지부 위원장이 증인으로 참석해 현실에서 겪고 있는 비정규직의 인권침해를 진술했고, 두 법안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인권의 관점이 녹아들지 못한 청문회
청문회를 지켜본 안산노동인권센터 박현희 활동가는 "인권의 관점에서 청문내용의 논점이 만들어지지 못한 채 두 법안을 둘러싼 관련자의 이해관계를 측정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증인으로 참석한 권혜영 금융노조 비정규직 지부위원장도 "청문회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는 기회가 부족했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국가인권위의 청문회는 국회 등 다른 국가기관에서 진행하는 청문회와는 분명 달라야 한다. 인권의 관점에서 질문을 선택하고 증언을 유도하면서, 무엇보다 인권의 문제를 드러내도록 청문을 진행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을 다루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인권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파견 대상이 확대돼 비정규직이 대폭 양산됐을 때 어떤 인권의 범주가 얼마만큼 침해될 것인지에 대해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범용 활동가는 "1기 국가인권위가 비정규직 테스크포스팀까지 꾸려가며 3년 동안 비정규직 문제를 다뤘으면서도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후과"라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명확한 관점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인권위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더라도 타협적이거나 절충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 아니냐"라고 우려했다.
인권위는 28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두 법안에 대해 논의한 후 국회에 '의견제시'나 '정책권고'를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인권위 내부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거나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의견표명이나 정책권고가 무작정 미뤄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출범부터 사회권을 강조해 온 2기 국가인권위가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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