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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공공도서관 주민번호 일률적 요구는 인권침해"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발표…인권단체, "미흡"

공공도서관들이 무인좌석발급기를 도입해 이용자들에게 주민번호 입력을 요구하거나 법적 근거도 없이 열람실 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하는 등 정보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해온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아래 인권위)가 제동을 걸었다.

1일 인권위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시행한 직권조사 결과 공공도서관들이 △무인좌석발급기로 이용 시민들의 주민번호를 일률적으로 요구하거나 △열람실 안에까지 CCTV를 설치하고 별도 규정없이 관리·활용하며 △원격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지털도서관 컴퓨터(PC) 이용행태를 모니터링하는 등 임의적이고 과도한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활용해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직권조사는 지난 2003년 11월 김 아무개 씨가 "시흥시립도서관(아래 시흥도서관)이 열람실 내부에까지 CCTV를 설치하고 무인좌석발급기를 도입해 주민번호 입력을 강요하고 있다"며 낸 진정에 대해, 인권위가 2004년 7월 인권침해 행위임을 인정하고 도서관장에게 재발방지를 권고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인권위는 조사 착수 후 시흥도서관이 CCTV 촬영방향을 열람실 내부가 아닌 출입구 방향으로 조정했고, 무인좌석발급기도 입력절차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에게는 기존 방식대로 열람증을 발급하도록 조치해 별도의 구제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진정을 기각했다. 동시에 인권위는 "공공도서관의 열람실을 이용하는 데까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무인좌석발급기를 도입한 공공도서관에 대해 직권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날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인권위는 국립중앙도서관장 및 해당 도서관장들에게 △무인좌석발급기 이용시 주민번호 입력방식 대신 개별 아이디(ID)와 비밀번호 입력방식 등 대체방안을 강구하고 △디지털 자료실 이용자의 PC 화면을 도서관 관리자가 임의로 모니터링하는 행위를 중지하며 △도서대출 회원증에 주민번호를 표기하는 대신 다른 방안을 마련하고 △회원의 책임과 의무 및 규제사항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도서관 관련 법규와 규정을 시민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하는 방향으로 재개정하며 △개인정보 보호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주민번호 수집 허용 여지 남겨

이번 권고는 공공도서관 전반의 정보인권 침해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도서관이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 있는 여지를 여전히 남겼다는 분석이다. 다산인권센터 박김형준 활동가는 "무인좌석발급기에 주민번호를 입력하는 대신 개별 아이디로 로그인하더라도 아이디를 만들려면 주민번호가 필요하니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고, "주민번호 입력 강요는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공공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떨어뜨리며 도서관 관리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지우는 상황을 초래한다"며 무인좌석발급기의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그는 "더 이상 공공기관에서 주민번호나 지문 등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수집하거나 저장 및 남용하지 않도록 인권위가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야 했다"고 질타했다.

무인좌석발급기 문제를 처음 제기한 2003년 당시 진정인 김 아무개 씨는 "인권위 권고 이후 시흥도서관이 주민번호를 입력하지 않는 열람증 방식도 허용했지만 시민들 입장에서는 일일이 직원들에게 부탁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고 부담스럽다"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고 직원들도 사용법을 잘 모르더라"고 꼬집었다. 그는 "인권단체들과 함께 노력한 결과 시흥도서관이 주민번호의 일부만 입력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꾸려다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이후로 미뤘는데, 도서관 측이 이번 권고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라며 "도서관 출입에 관리가 필요하다면 관리인력을 늘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지 관리책임을 시민들에게 지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체 규정만 만들면 CCTV 설치도 가능?

한편 인권위는 이날 CCTV를 설치한 14개 도서관이 △자체 규정이나 별도의 관리·감독체계 없이 △저장정보 삭제기간도 7일에서 2개월까지 도서관마다 일정하지 않고 △저장정보의 활용도 별도 규정 없이 도난 사고 발생 등 필요시 관리자가 임의 열람하거나 경찰관 입회 하에 수사자료로 활용하고 있다며, 사용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CCTV 장비는 회수하고 CCTV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기 전이라도 이에 관한 자체 규정이나 운영방안을 수립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는 인권위 기존 권고에 비해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4년 5월 인권위는 강남구 일대 범죄 예방 및 수사를 위한 CCTV 설치에 대해 "개인의 초상 그 자체뿐만 아니라 특정시간에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등에 관한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것"인데도 "법률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서장의 재량"에 의해 설치되고 있어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리와 법률에 의한 제한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게다가 인권위는 "(CCTV 운영은) 법률에 근거를 두더라도…범죄예방과 범죄수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른 수단들을 먼저 강구한 후)…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동원되는 보충적 수단"이라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이번 권고에 대해 박김형준 활동가는 "자체 규정이나 운영방안만 수립되면 CCTV를 설치해도 좋다는 면죄부를 준 것으로 인권위의 이전 권고에 비해 후퇴한 것"이라며 "공공도서관도 길거리와 마찬가지로 사유지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이므로 시민들을 CCTV로 감시한다는 발상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