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누더기 과거사법 결국 국회 통과

밀실야합으로 조사권한·범위 축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밀실야합에 의해 누더기가 된 과거사법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3일 오후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전날 양당이 합의한 과거사법안을 표결에 부쳐 재적 299명 중 250명이 참석, 찬성 159표, 반대 73표, 기권 18표로 통과시켰다.

공포 후 6개월이 경과되면 발효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아래 과거사법)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4년(필요한 경우 2년 연장) 동안 조사활동을 진행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과거사위)가 국회 선출 8명, 대통령 지명 4명, 대법원장 지명 3명 등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과거사법은 진실규명의 범위를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행한 항일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이후 법 시행일까지의 해외동포사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해방 이후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과 그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해방 이후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과거사위가 이 법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등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며 다만 과거사위가 "재심사유에 해당하며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했다.

과거사위원의 자격은 △공인된 대학의 전임교수 △판사·검사·군법무관 또는 변호사 △3급 이상 공무원 △성직자 또는 역사고증·사료편찬 등의 연구활동 등에 10년 이상 종사한 자로 했다.

하지만 과거사법의 조사대상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가 포함되어, 진실을 규명한다는 법안취지와는 반대로 색깔논쟁 등 소모적인 논쟁으로 인해 진실이 은폐될 구실이 마련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아래 범국민위)는 2일 밀실야합안에 대한 성명을 통해 "'국가 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인권침해 구제'라는 애초 입법 취지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법안통과 직전 3일 국회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 참석한 유가족들

▲ 법안통과 직전 3일 국회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 참석한 유가족들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원칙적으로 조사대상에서 제외되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대책위'는 법안통과 직전 성명을 내고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리는…(유서대필 조작사건의 경우)…특별한 재심 사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한 과거청산법의 조사대상에서 제외된다"며 "과거 독재정권이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탄압하기 위한 조작사건들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이라는 명목으로 다시금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진실규명 범위를 "권위주의 통치"까지로 못박은 점도 마찬가지. 노태우 정권 이후 발생한 '자주대오' 사건 등에 대한 진상조사는 불가능하게 됐다.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결의대회 참석자들

▲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결의대회 참석자들



범국민위는 "청문회 등 진상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권한을 담지 않은 법안으로 과연 수십년 동안 은폐되어 온 국가폭력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겠는가"라며 "조사권한이 없는 법안으로는 진상을 규명하기는 커녕 가해자에게 면죄부만 줄 수 있으며 피해자를 이중, 삼중의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는 "불충분하고 논란의 소지가 많은 법이 통과된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우리사회가 과거와 단절하고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며 "앞으로 국민들의 힘으로 올바른 과거사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