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다가올수록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은 바삭바삭 타들어갔습니다. 정부가 특조위 조사활동 기간이 6월 30일로 끝난다고 억지를 부려왔기 때문입니다. 5월말에는 해양수산부, 기획재정부 등이 특조위에 공문을 보내 사실상의 종료 절차를 강행하기 시작했습니다. 6월 30일에 조사활동을 종료해야 하니 이후에 보고서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내라는 공문이었지요.
정부청사 앞 항의농성
이대로 끝나게 둘 수는 없었습니다. 특별법이 정한 1년 6개월의 기간도 유가족과 국민들이 청원한 법률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애초 청원안은 2년의 기간을 정하고 필요할 경우 1년 더 할 수 있도록 했거든요. 그런데 1년 6개월조차 못 지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정부에 항의하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정부청사 앞 농성은 6월 25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첫날은 세월호 참사 800일 즈음한 범국민문화제를 마치고 순조롭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수난이 이어졌습니다. 농성장 인근에 걸어놓은 노란리본을 뜯어가려고 경찰이 들이닥쳤고 은박깔개를 가지고 도망치는가 하면 기자회견을 하러 간 국회 앞에서는 피켓이 시위용품이라며 부숴댔습니다. 기운 내자며 서로 북돋았지만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성이 시작되면서 정말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전국적으로 특조위 상황 알리기, 1인 시위, 촛불문화제, 새누리당 항의 기자회견 등이 열렸고, 시민사회 각계가 모여 힘을 모아 진실을 밝히자고 선언했습니다. 특조위는 정부의 위법한 강제종료 절차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조사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해양수산부는 국회의 해석을 따르겠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7월 2일 농성보고대회는 서로 더욱 힘 다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국회의 역할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정부의 강제해산 절차가 위법한 것임을 따끔하게 경고하고, 자꾸 논란이 되는 활동기간을 명확히 보장해야 합니다. 또한 인양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진 만큼 특조위가 세월호 선체정밀조사를 할 수 있도록 특별법 개정에 나서야 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많은 후보들이 세월호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약속했습니다. 20대 국회가 시작된 후 153명의 국회의원이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요. 최근 국회 농해수위는 세월호 관련 협의를 위한 소위를 구성했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집중적인 논의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여전히 특조위 활동기간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정부를 거들고 특별법 개정에 반대하는 당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이런 새누리당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고요.
작년 특별법 시행령 제정 과정을 떠올려보아도 정부가 국회를 어떻게 무시하고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법이 위임한 범위를 넘어선 시행령을 정부가 마음대로 강행하자 국회에서는 국회법 개정안이 상정되었지요. 발끈한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이 내쫓기기도 했습니다. 이번 정부의 강제종료 절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연히 법이 정한 기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정부가 흔드는 것이 그저 특조위가 아니라 국회라는 점도 알아야지요. 정부가 아무리 꽁꽁 숨기고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국민들이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점점 더 드러나는 진실
지난 한달 동안 세월호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이 실려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과적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안개가 끼어 위험했던 날 유일하게 세월호가 출항한 이유에도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관련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낡은 배를 개조해 세월호를 도입 운항하게 된 배후에 제주해군기지가 있었다는 정황들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의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를 통제한 녹취록도 폭로되었습니다. 새누리당은 그게 무슨 통제냐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지만 언론 통제 사실은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길들여진 언론이 참사 초기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여러 왜곡 보도를 일삼으며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이중 삼중으로 고통스럽게 했으니까요.
한편, 6월 17일에는 희생자들의 구조와 수습에 헌신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 님이 숨진 채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의 잠수 활동으로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김관홍 님은 정부가 책임을 벗어날 핑계만 찾으며 진실을 숨기려드는 모습에 누구보다도 분노하면서 진상 규명 투쟁에 함께 해오기도 했습니다. 후유증으로 잠수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정부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아 생계의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김관홍 님의 사망 소식에 유가족들은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월호 참사가 남긴 숙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다시 비슷한 참사를 겪지 않으리라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비슷한 참사를 겪게 됐을 때 조금 더 잘 겪어낼 수 있을 거라 아무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숙제를 풀어가는 시간에 국민의 힘으로 세운 특별조사위원회도 함께 있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