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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원폭2세임을 '커밍아웃'하고 죽기 직전까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치 않았던 원폭2세환우회 회장 김형율 씨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히로시마 피폭자로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려온 어머니로부터 대물림된 고통에서 그는 벗어났지만 지금도 이 땅에는 여전히 많은 원폭2세들이 김형율 씨가 겪었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자신과 형제들에게 돌아올지 모를 낙인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기 직전까지 원폭2세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온몸으로 촉구해왔다. 결국 그는 지난 5월 29일 자신의 죽음으로 원폭2세 환우들의 삶을 마지막으로 세상에 증거하고 떠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미·일 정부는 물론 한국정부조차도 피폭후유증이 대물림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핑계로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90년과 이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이미 원폭1세 응답자의 41.1%가 1명 이상의 자녀에게 원폭후유증이 있다고 답했고 4자녀 이상이 원폭후유증을 앓는다고 응답한 사람도 무려 23.6%에 이르렀다. 지난 2월 국가인권위 조사결과는 원폭2세들이 같은 또래의 일반인에 비해 각종 질병에 걸린 수가 최고 89배나 높았으며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10세 미만에 사망했고, 이 가운데 사망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60.9%에 달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언제까지 침묵만 할 셈인가.

이제 그는 떠났지만 대물림되는 재앙은 여전히 이땅에 남아 있다. 정기 건강검진 및 치료를 위한 의료원호와 생계지원, 피해자 치료를 위한 국립원폭전문병원 설립은 '커밍아웃'하지 못한채 사그라들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철저한 실태조사를 통해 피해상황을 규명하고 그동안 국가책임을 방기해왔음을 사죄해야 한다. 이것만이 그의 넋을 위로하고 이 땅의 또다른 '김형율'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길이다. 다행히도 그의 노고에 힘입어 원폭피해자와 2세들을 위한 입법이 준비되고 있으니 국회 차원에서 시급히 마무리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