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신규 확진자는 지난 7월 7일 이후로 두 달여간 네 자릿수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른 거리두기 단계 상향 조치 역시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미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팬데믹을 살아오며 나름대로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변화한 일상의 조건이 숨 막히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위드 코로나, 방향과 목표
4차 대유행 한복판에서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이 이야기되고 있다. 백신 개발 이후 접종이 본격화된 나라들에서도 변이 바이러스, 돌파 감염 등으로 인해 확진자가 발생하자,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기보다는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는 위드 코로나 개념이 제시되었다. 영국, 싱가포르, 덴마크 등에서 이미 위드 코로나로 전환을 선언한 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전환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의된 바가 없다. 한국 정부는 논의 시작 시점을 예정했을 뿐이며, 이미 전환을 선언한 나라들도 방역을 포함한 사회 정책의 변화는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이름에서 드러나듯,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은 바이러스의 ‘퇴치’가 아니라 ‘관리’를 목표로 하는 방역 체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체계에서는 단순히 확진자의 숫자가 아니라 치명률을 기준으로 위험도를 판단하게 된다. 개개인의 만남이나 접촉을 모두 금지하는 강력한 거리두기 정책은 완화되며, 대량 검사를 통한 확진자 색출과 격리 또한 그 수위를 낮춘다. 대신 확진자 중에서 증상이 심각한 환자들만 격리 후 치료를 진행하며, 경증이나 무증상 감염인은 예후를 지켜보는 방식으로 관리할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때보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크게 느껴지는 지금이기에, 오히려 여태까지와 같이 강력한 방역 정책 일변도로는 삶과 사회 모두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방역 당국은 다가오는 9월 말부터 위드 코로나 전환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일상의 회복’을 언급했다. 지금까지 사회 구성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쳐왔던 거리두기 정책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변화가 예고된 만큼, 위드 코로나 체계로 전환한 이후에는 모두의 일상 역시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회복할 ‘일상’은 무엇이며, 누구와 함께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지난 1년 8개월간 무너진 일상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며, 전환의 방향과 목표를 잘 잡아야 할 때다.
전환의 근거
정치인들은 위드 코로나를 제안하며 ‘경제 활성화’라는 목표를 말한다.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전환의 근거로 제시된다.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며 사적 모임이 제한되고 사업장의 영업시간 또한 단축되어온 지 1년 8개월이 되었다. 매출은 줄어드는데 임대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운영비 절감을 위해 고용 인원을 줄이는 경우가 많아져 직원을 두는 자영업자의 수는 3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가게 수익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기에 혼자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게 외의 부업을 겸하는 1인 자영업자의 수는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상공인들의 일상은 그렇게 무너졌다. 정부는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접촉을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며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방역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피해’를 어떻게 함께 책임질지에 대해서는 발을 빼왔다. 소상공인들이 겪는 경제적 부담의 큰 축인 임대료를 조정하러 나서는 일에는 난색을 표하는 대신 ‘착한 건물주’가 되어주기를 요청하는 데 그치는 식이다.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방역 정책으로 인해 소상공인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는 손실보상법이 필요하다고 외쳤지만 정작 법안 제정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한참 뒤늦은 올해 7월 통과된 손실보상법에는 법안 제정 이전 1년 6개월간의 손실까지 보장하는 소급 적용에 관한 내용이 빠져있었다. 대표적인 소상공인 지원책으로 낮은 이율의 대출이 시행되어 왔지만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뿐더러, 대출 대상을 사업장을 영업 중인 경우로 한정하며 폐업할 경우에는 대출금을 일시 상환하는 원칙을 두어서 오히려 폐업의 기회마저 박탈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방역 정책을 수행하며 누군가의 일상이 무너졌는데, 무너진 일상은 아무도 함께 책임져주지 않았다.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단축을 포함한 방역 정책이 사회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그로 인한 고통과 피해 역시 사회가 함께 분담했어야 했다. 임대료 조정, 소급 적용을 포함한 손실보상법과 같이 구체적인 방법도 이미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양해’와 ‘선의’를 구했을 뿐, 법과 제도를 정비해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분담하는 일은 외면해왔다. 이미 전 사회가 크고 작은 경제적 타격을 겪고 있는 지금, 위드 코로나 전환을 통해 방역 정책이 완화된다고 해서 저절로 소비가 늘어나고 소상공인의 일상이 ‘활성화’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소비 진작을 꾀하기 이전에 소상공인의 손실을 소급해 보상하고 임대료 부담을 정부가 나서서 낮추는 일이 우선임은 물론이다. 정치인들은 무너진 경제를 말하지만, 경제는 저절로 무너지지 않는다. 만일 무너진 것이 있다면 방역 정책으로 인한 부담과 피해를 오롯이 전가 받은 누군가의 일상일 것이다.
전환을 말하려면 먼저 전환의 근거를 똑바로 세우자.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전환이 필요한 게 아니다. 방역 정책으로 인한 부담과 피해를 사회 구성원 중 일부가 끌어안는 지금까지의 체제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전환을 말해야 한다. 전환의 근거와 목표는 ‘무너진 경제를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방역 정책이 더 이상 누군가의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새로운 방역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전환할 것인가
방역 당국은 위드 코로나의 조건으로 백신접종률을 제시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방역 체계 전환과 관련해서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거나 보완하기 위해서는 고령층의 경우 90% 이상, 일반 성인은 80% 이상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8월 3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부스터샷도 전문가 자문과 방역 당국의 결정에 따라 고령층과 의료인력 등 고위험군부터 늦지 않게 시작해 순차적으로 접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발언했다. 방역 정책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일정한 수준의 집단 면역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사실이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이미 백신이 도입된 올해 초부터 백신 접종률 제고에 온 힘을 쏟아온 바 있다.
그러나 백신접종률 자체를 올리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을 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불평등은 포착할 수 없다. 의료 기관 노동자가 우선접종대상이 될 때 같은 병원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에게는 접종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같은 사업장에서도 정규직에게만 접종 예약을 받고 비정규직에게는 소식조차 전하지 않는 일이 있었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차별적인 코로나19 전수검사 명령만 내려질 뿐, 이들을 위한 백신 접종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기저 질환을 지녀 감염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중증재가장애인에 대한 접종 계획도 부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백신 접종 과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억지로 쉬어야 해서 생계를 위협받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해도 쉴 수 없어서 과로하며 감염의 위험에도 더 크게 노출된 사람들이 있었다.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섣불리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거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길 모두가 기존 사회의 불평등한 고리를 따라 구성되어 있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불평등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곧, 누가 전환의 주체로 설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백신접종률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지는 사람들은 전환의 주체로 초대받지 못할 사람들이다.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이 기존 방역 체계의 한계를 인정하며 새로운 방역 체계를 수립하는 일이라면, 기존 방역 체계에서 차별과 불평등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 전환의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들이 주체로 설 수 없다면, 전환 이후에도 피해를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질병을 ‘관리’하는 사회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전환이 아니다. 불평등에 대한 성찰 없이는 전환도 불가능하다.
방역의 포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역 체계 수립
위드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모두 희망에 차 있지만은 않다.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은 백신 접종을 통해서 집단 면역을 형성함으로써 코로나를 종식시키겠다는 목표가 달성 불가능한 것임을 선언하는 일이며, 이는 곧 일정한 수의 감염과 확진자를 감수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역 풀었다가 나도 감염되면, 확진자가 폭등해서 걷잡을 수 없어지면 어떡하지?” “전환 이후에 감염되면 위·중증 환자 말고는 치료도 제대로 못 받는 거 아니야? 검사 비용과 치료 비용은 어떻게 되는 거야?” 끝날 줄 모르는 4차 대유행을 살아가는 지금 느끼는 불안은 전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더해 ‘거리두기 완화해서 소상공인 살리고 경제 활성화하자’는 정도로 위드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일부 정치인의 태도는 불안을 가중시킨다.
그럼에도 우리가 불안을 안고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면, 다시 기억하자. 위드 코로나 체계로의 전환은 그저 ‘방역 정책 완화’나, 혹은 패배주의적인 ‘방역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을 지킬 국가의 책무는 여전하기에, 전환은 오히려 지속 가능한 방역 체계를 새로 수립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 국가가 스스로의 책무를 방기하는 일이 없도록, 먼저 전환의 방향을 묻고 고민하자. 누구와 함께 어떤 일상을 회복할 것인지 우리가 말할 때, 경제가 아니라 삶을 살리는 전환도 가능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