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의 일환으로 시작해 점차 확대되어온 정부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4일 서울행정법원이 전국의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에 효력정지를 결정한 데 이어, 14일에는 서울 지역의 상점·마트·백화점에도 효력이 정지됐다. 정부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방역패스 적용을 일부 시설에 한해 해제했지만, 본 재판 과정에서 방역패스의 확대 적용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 방역패스 확대를 계기로 터져 나온 방역패스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미접종자 혹은 접종미완료자에 대한 불가피한 제한이 어디까지인지, 그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백신 접종이 코로나 범유행(팬데믹)의 ‘종식’을 약속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스쳐지나간 후 감염 가능성을 장기적으로 ‘통제’하며 살아가야 하는 지금, 방역패스 정책은 ‘미접종자’에 대한 국가의 인식과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방역패스, 미접종자 보호를 우선순위에 둔 정책이었나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기본 접종 증명이나 음성 결과 확인으로 특정 시설의 출입과 이용 자격을 부여하는 방역패스의 정책 목표를 ‘미접종자 보호’와 이를 통한 ‘의료체계의 여력 확보’라고 말한다. 확진자 수와 위중증 환자의 증가는 현재에도 위태로운 병상 부족과 의료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고, 전체 위중증 환자나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미접종자라는 사실은 미접종자 보호를 위한 정부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미접종자의 감염을 예방하고 위증증 및 사망 위험을 막겠다는 목표는 단지 방역패스를 통해 미접종자의 사회적 활동과 관계를 제약하는 것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정부는 방역패스가 ‘미접종자 전파 가능성의 차단’ 목적도 있지만 ‘미접종자 보호’를 더 우선에 두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미접종자가 어떤한 사회적 조건과 개별적 고민 속에서 백신 접종을 못하거나 안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에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미접종자에게 실질적인 ‘벌칙’으로 작용하거나 사회적 비난 및 낙인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방역패스 도입 검토 당시부터 제기되어 왔던 우려다. 지금은 방역패스가 개인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문제제기가 청와대 청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법원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등 사회적 쟁점으로 전면화된 형국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일체의 구별도 없이 형식적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은 의학적 판단을 무시한 처사’라며 일축한다. 미접종자와 사회적 안전망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방역정책이 무엇인지 논의하기 위해 필요한 우려조차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다름 아닌 정부인 셈이다.
게다가 “방역패스는 부당한 차별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 함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라는 김부겸 국무총리의 호소는 미접종자의 존재를 대다수 국민들의 일상회복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지목하는 효과를 낳는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민생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확진자 증가로 의료체계에 대한 부담이 높아지는 것은 미접종자가 ‘최소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일까? 이는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 과정에서 정부가 감염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률적인 방역패스에 의존한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여러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건강과 공동체 보호를 함께 실행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나가야 하는 스스로의 역할을 접종자 vs 미접종자의 권리 갈등 문제로 등장시켰다. 나아가 이 갈등 구도는 백신무용론을 주장하는 안티 백서(Anti-vaxxer)와 미접종을 선택한 사람이 구분되지 않도록 만들면서 미접종자는 집단면역 형성을 위협하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미접종자 = 무책임한 ‘백신 거부자’?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주저’(Vaccine hesitancy)를 공중보건에 대한 10대 위협 가운데 하나로 꼽은 바 있다. ‘백신 주저’는 종종 ‘백신 거부’로 번역되지만, 백신 접종 거부 운동(anti-vaccine movements)의 세계적인 확산 하에서 백신무용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단일한 사람들의 반대 행동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백신 접종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백신 수용이 지연되거나 거부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저와 망설임에는 사회적인 맥락과 배경이 존재한다. 이는 백신 접종이 코로나19를 예방하고 위중증이나 사망의 위험을 현저하게 줄이는 최선의 선택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학적․과학적 판단뿐만 아니라, 집단면역이라는 공공재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에 참여할 수 있는 개인적․사회적 조건이 존재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의 과정과도 결부된다. 시민건강연구소가 비난이나 의무를 강조하는 것보다 시민적 연대를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과 사회적 조건을 살피고 이를 더 나아지게 하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리서치의 <[코로나19] 상황 상황·백신 접종 인식 및 정부대응평가> 2021년 11월 2주차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예방접종 이상반응에 대한 우려’(67%)다. 그리고 ‘백신의 효과를 믿을 수 없어서(50%)’, ‘기본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아서(43%)’가 뒤를 잇는다. 2022년 1월에 조사한 백신 추가접종을 망설이는 이유 역시 비슷한 결과지만 ‘정부의 이상반응 대처 및 보상이 부족해서’(47%)와 ‘본인 또는 주변인이 예방접종 이상반응을 경험해서(42%)’가 3, 4번째 이유를 차지한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아서 발생하게 될 위험이 백신 접종으로 인한 부작용보다 훨씬 크다는 의학적 사실에서만 본다면 현재 3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접종자의 ‘숫자’는 미접종자 스스로와 사회공동체의 피해를 가중하는 비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다. 하지만 백신 수용이 지연되거나 거부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우리는 어느 정도로 떠올릴 수 있을까?
한 달에 겨우 하루 쉴 수 있는 자영업자는 자신에게 1~2일의 백신 휴가를 줄 여유조차 없이 미루고 미루다 미접종자가 된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고령층 혹은 그런 고령층을 돌보는 또 다른 고령층은 부작용으로 자신의 건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지만, 병원마다 접종에 대한 말이 다르거나 ‘알아서 선택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건강 악화로 인한 치료비가 부담되어서, 다른 가족에게 폐가 되는 것만은 막기 위해서 백신 접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중장년층에서도 접종 후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10만 원 백신 접종 이상반응 피해보상금을 받고도 백신 부작용 인과성이 거부된 사람, 1차 접종 후에 폐에 물이 차는 부작용을 보고했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다시 부작용이 올 수 있으니 2차 접종은 대학병원에서 맞으라는 보건소의 통보를 받아야 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뉴스를 통해 들려온다. 백신 접종 후 생리불순이나 부정출혈 부작용 우려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청와대 청원으로 드러났지만, 정부는 ‘월경을 포함해 모든 이상반응에 대해 신고가 가능하다’고 답변할 뿐이다. 청소녀 자녀를 둔 부모는 혹여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접종을 늦추는 선택을 한다. 백신 접종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를 지켜본 접종자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백신 접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며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다. 개개인들의 이러한 판단과 선택은 ‘내가 백신을 맞고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공통된 감각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도 책임져주지 않으니까’
국가는 백신 접종을 통해 코로나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제시했을지언정, 비합리적인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함께 찾을 책임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며 보건복지부 장관, 질병관리청장, 서울특별시장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지방자치단체 고시가 없으면 방역패스는 시행되지 않는다’며 국가 차원의 방역정책 책임을 지자체로 미뤘다. 고시 주체인 서울시는 사실상 방역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당국이라며 입장을 유보했다. 정부가 백신 접종을 호소하고 방역패스 확대의 필요성을 확언하지만, 접종을 주저하는 이들이 ‘책임지는 정부는 없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K-방역의 성과를 자축하는 국가에서 ‘미접종자 보호’와 함께 ‘미접종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방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전 세계에서 법학 전문가들이 모여 코로나19에 대한 각국의 대응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 ‘LEX-ATLAS: COVID-19’가 발간한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화에 대한 법적, 헌법적, 윤리적 원칙>에서는 ‘백신 주저’에 대한 ‘건설적인 개입’(Constructive engagement)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합리적인 백신 주저가 자주 발견되는 배경에는 바로 국가 차원의 박해, 차별, 주변화 또는 방치의 역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코로나19로 우리가 깨달은 건 모두가 똑같이 감염병의 위험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똑같이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었다. 감염에 이르는 과정부터 감염 이후까지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선택지는 사회적 조건이나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 사회 내 불평등 구조는 개개인의 백신에 대한 수용과 지연, 포기와 거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구성원들에게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설득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 없다는 건 명확하다. 정부 정책도 높은 백신접종률 속에서 백신 강제나 의무화를 선언하기보다 일상회복에 과정에서 필연적인 감염의 확산과 위중증의 증가 통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건강을 위해 집단면역 형성이라는 정책의 방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불신이 자리하게 된 합리적인 근거를 발견하고 백신 주저의 이유와 배경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대응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는 점이다. ‘민간부문에서 방역패스를 확대하는 건 안정적인 일상회복을 위한 의학적 판단에 따른 타당한 조치’라며 방관하는 태도는 감염병의 위험과 책임을 다시 개인에게 전가한다. 백신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활동과 관계에 수용될 수 있는 조건을 찾고 만들기 위해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접종자 시민의 자리를 지우지 않으려면
접종자와 미접종자의 구분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수록 백신 주저와 관련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불평등의 문제를 고려할 책임, 방역정책의 일환으로 이러한 조건에 개입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할 정부의 책임 역시 가려진다. 이는 복합적인 조건을 고려해 위험에 대응하도록 지원하거나 위험의 크기에 비례해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방역 체계를 추진하기보다, 방역패스와 같은 일률적인 규제 중심의 방역정책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미접종자가 기저질환이 있을수록 백신을 접종해야 피해를 덜 본다는 과학적 근거를 외면하는 사람,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맞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이라고 인식될수록 정부 정책에서 ‘단계적 일상회복’은 접종자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미접종자의 일상은 제한되어도 마땅한 것이 되기 쉽다. 백신 접종 여부로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구분하고 많은 차등적 대우들이 방역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갈 때 미접종자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동등한 한 개인이자 시민으로서 등장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접종자를 백신 접종률 속도전의 대상이자 의료체계 붕괴를 막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감염 확산을 줄이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만들어가는 사회구성원으로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